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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承允(서대문형무소역사관)

DOI : 10.29004/jkmch.2017.12.83.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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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1907년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언론을 통해 전국으로 확산되었다. 전국에서 남녀노소 신분고하에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였다. 불교계에서도 적극적으로 의연에 참여하였다. 신문을 통해 확인되는 불교계의 참여 사례는 51건으로, 총 50개 사찰에서 1,277명이 동참했다. 의연에 참여한 대다수가 승려라는 점을 감안하면 전국 승려 중 약 20%가 국채보상운동에 참여한 것이다.
이렇게 승려들이 국채보상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1907년 3월 3일 불교연구회에서 승려들의 운동 참여를 독려하였기에 가능했다. 이 날의 결의는 승려들을 자극하여 각 지역 유력 사찰을 중심으로 의연 활동을 전개하였다. 교계를 대표하는 조직에서 국채보상운동 참여를 공식적으로 결의한 것은 불교계가 유일하다.
한편 국채보상운동 참여를 ‘국민의 당당한 의무’로 규정하는 분위기 속에서 승려들은 적극적으로 의연에 참여했다. 오랫동안 천시를 견뎌온 승려들이 국채보상운동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이들도 당당한 국민임을 드러내는 과정이었다.

In 1907, a large number of Koreans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20% of the monks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which indicates that the Buddhist community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movement. This paper analyzes the participation status of Buddhist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and analyzes the reasons why they actively participate in the movement.
The first, on March 3, 1907, paid attention to the speech resolution of the Buddhist Study Group. The Buddhist Study Group was the representative organization of the Buddhist era at the time, and their determination prompted monks throughout the country. Second, the social atmosphere that defined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as the ‘obligation of the people’ influenced the participation of the monks. The monks, who had been oppressed during the Joseon Dynasty, actively participated in the national debt redemption movement, revealing themselves as dignified citizens.

목차

요약
1. 머리말
2. 불교계의 국채보상운동 참여 경향
3. 불교계 국채보상운동의 성격
4. 맺음말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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