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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발해학회 고구려발해연구 高句麗渤海硏究 第34輯
발행연도
2009.7
수록면
189 - 210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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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국에서 현주(중경)으로의 천도는 늘어난 영토의 효율적인 통치와 국력의 상승에 따라 이루어졌다. 구국은 발해 건국지이고, 고왕을 비롯하여 무왕이 잠든 곳으로서 다른 곳으로 수도를 옮긴 뒤에도 여전히 중요시되었다. 중경시기의 도성은 서고성이었는데, 서고성은 그 형태나 규모면에서 이전의 도성인 오동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발해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국가적인 프로젝트였다. 따라서 서고성은 당시로서는 최신시설과 체제를 갖춘 도성이라고 할 수 있다.
발해가 중경으로 천도한 문왕대는 이전의 무왕대와 달리, 당과의 교류가 매우 활발하였다. 이는 무왕대와 문왕대의 국제적인 정치상황은 달랐지만, 모두 발해의 지배력을 확장하는 방향에서 대응하였기 때문이다. 문왕은 당에 사신파견을 통하여 경제적인 이익을 창출하고 국가의 재부를 풍족하게 하였다. 아울러 당나라의 문물제도와 통치술에 대해서도 이해를 심화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중앙 및 지방 통치제도, 왕실제도의 정비를 이루어 국가의 기초를 다지는데 성공하였다.
이상에서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발해 중경시기의 대외관계의 양상을 편의상 국가별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물론 각 장의 제목에 나오는 지배체제의 정비, 말갈복속, 新羅道(교통로) 같은 내용은 다른 국가들과의 관계에도 모두 나오는 일반적인 상황이라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당과의 관계에서는 말갈복속이나 교통로의 문제보다는 늘어난 영토의 효율적인 통치를 위한 소프트웨어의 전수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여겨지기 때문에 사절단의 파견목적도 그러한 것에 중점을 두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일본과의 관계는 내부체제의 정비과정과 신라의 견제 의식이 관련이 있었다. 746년 발해인과 철리부인 1,100여명의 일본 도착 기사는, 발해가 새로 포섭한 말갈제부족을 회유하기 위해 그들을 대외무역에 정기적으로 참여시켜 주는 초기단계의 일로 보여지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신라와의 관계는 구체적인 자료가 별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新羅道라는 루트의 재개통을 통해 공적ㆍ사적인 교섭의 토대를 이루었고, 이를 바탕으로 민간차원의 교섭이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결국 발해 역사에서 중경시기는 사실상 첫 번째의 계획적인 계획에 의한 도성을 축조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지배체제의 정비를 통해 발해 주변의 여러 세력들(당, 일본, 신라 등)과의 대외관계의 礎石을 놓았다는 데에 그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지배체제의 정비와 당과의 관계
Ⅲ. 내부정비와 일본과의 관계
Ⅳ. 新羅道를 통해 본 신라와의 관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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