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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범환 (서강대학교)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25輯
발행연도
2009.6
수록면
241 - 264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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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하대 견당국학유학생들은 대부분 관비유학생이며 신분은 거의가 육두품이었다. 신라의 최고 통치자인 왕은 육두품 출신의 인물을 당에 국학유학생으로 파견하였는데, 그 의도는 왕권을 보좌하고 지지할 수 있는 인물들을 키우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국왕이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에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도 틀림이 없다. 더 나이가 왕권의 강회를 위해서 이들의 학문적인 능력이 필수적이라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의 또 다른 의도는 당시 국제관계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당을 중심으로 한 국제 질서 속에서 신라는 당 주위의 여러 나라들과의 관계에서 외교적 주도권을 잡기 위한 노력을 벌였다. 특히 발해와는 군사적인 대립뿐만 아니라 문화적인 측면에서도 경쟁을 하였는데, 신라에서 보낸 견당국학유학생의 숫자가 발해에서 파견하는 것과 비교해 볼 때 그 숫자가 현저하게 다른 것도 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신라왕의 의도와는 달리 육두품 견당국학유학생들은 唐의 科擧制에 의한 立身 出世의 법을 경험하고 신분적 제약이 없는 곳에서 10년 이상 생활한 결과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뜨게 되었다. 그 결과 신라로 돌아와서는 진골과의 신분차에서 오는 사회적 제약의 한계를 극복하기 어려웠다. 그들이 받은 대우가 문한관이나 지방관으로 나가는 것 이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던 것이 이를 증명한다. 더 나아가 眞聖王代 이후에는 정치적 상황이 매우 혼란스러워지자 그들은 체제를 수호하기 보다는 骨品制度 자체를 해체하는 길로 나아간 것이다. 견당국학유학생들은 신라정부보다는 지방의 호족 세력과 연결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들 가운데는 後百濟나 高麗王朝에 새로운 관료로 등용되기도 하였다. 신라 왕실에서 파견한 견당국학유학생들은 왕실의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신라 사회를 해체하는 방향으로 이끄는 하나의 디딤돌 역할로 작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의 목적
3. 견당국학유학생 파견의 역사적 의미
4.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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