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찬흥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29호
발행연도
2007.11
수록면
9 - 39 (31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滿鮮史學’은 만주지역의 역사인 ‘만주사’와 ‘조선반도’의 역사인 ‘조선사’를 합해서 만들어진 용어로, 만주와 ‘조선반도’의 역사를 하나의 역사단위로 인식하였다. ‘만선사학’의 관점에서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을 ‘만선사관’이라고 한다. 白鳥庫吉이 1905년 처음 주장하였는데, 일제의 만주진출을 앞두고 창안된 역사인식이었다. 1932년 만주국 건국 이후 일제가 만주지역을 완전히 장악한 뒤에는 ‘滿蒙史’와 ‘東亞史’로 변화되었고, 다시 남태평양으로 진출하자 ‘大東亞史’로 확대되었다.
‘만선사’의 출발점은 고구려사였다. 고구려는 한반도 북부에서 만주지역에 걸친 영토를 차지하고 있었고, 중국과의 전쟁을 통해 성장하고 발전했기 때문에 일본 제국주의가 본받아야할 국가로 인식되었다. 고구려사는 기본적으로 ‘만주사’였지만 한반도와 밀접한 관계에 있었기 때문에 ‘조선사’의 일부로도 인식되었다.
일제 때의 고조선은 ‘기자조선’과 위만조선만을 가리킨다. 고조선은 중심지가 평양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조선사’였지만, 남만주 지역까지도 영역에 포함되었기 때문에 ‘만주사’의 일부로 서술되었고, ‘기자조선’과 위만조선의 지배세력이 중국에서 이주해왔기 때문에 중국사의 일부로도 인식되었다.
발해사는 고구려를 이어 만주민족의 두 번째 국가로 평가되었다. 발해사는 만주국 건국 이후 일본과 만주의 우호적 인 교류관계를 입증하고, 문명화된 일본이 미개한 만주를 개화시켜야 할 의무가 있음을 보여주는 역사적 실체로서 주목되었다.
끝으로 백제사, 신라사, 가야사는 반도의 역사 ‘조선사’로 인식되었다. 왜는 4세기 이후 ‘임나일본부’를 설치하여 백제와 신라를 附庸國家로 거느렸다고 보았다. 고구려ㆍ백제의 멸망은 신라의 ‘반도 통일’을 가져왔고, 이때의 신라를 ‘통일신라’라고 인식하였다. 하지만, ‘조선사’인 ‘통일신라’와 ‘만주사’인 발해를 분리해서 인식한 점은, ‘만선사’의 관점과는 대립되는 이해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일본 제국주의의 팽창과 ‘만선사학’
3. ‘만선사’의 출발점, 고구려사
4. ‘조선사’ㆍ‘만주사’ 그리고 ‘지나사’의 일부, 고조선사
5. 우호적인 만주ㆍ일본 관계의 상징, 발해사
6. ‘조선반도’의 역사, 백제사ㆍ신라사
7.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16)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

UCI(KEPA) : I410-ECN-0101-2012-911-0043154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