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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권수용 (조선대학교)
저널정보
역사문화학회 지방사와 지방문화 지방사와 지방문화 제14권 제2호
발행연도
2011.11
수록면
195 - 228 (34page)
DOI
10.17068/lhc.2011.11.14.2.1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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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병자호란 때의 의병활동은 매우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것은 전체적인 형세일 뿐, 호남에서는 그와 반대로 매우 활발한 활동이 있었다. 병자호란은 우리 민족에게 단순한 패배감만을 안겨준 것이 아니라 자존심에 엄청난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그 과정상에서 보면 호남인 모두가 분연히 일어나 국난에 나아간 쾌거이기도 하다.
그런데 병자호란이 일어난 지 100년이 훨씬 지나, 역사적 사실들이 서서히 잊혀져가고 있을 즈음에 그 행적들이 다시 표면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곧 『호남병자창의록』이라는 책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이를 통해 호남에서의 창의사실이나 규모를 엿볼 수 있게 되었으며, 임진ㆍ정유왜란과 정묘호란을 겪으면서 의병활동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병자호란 때에는 더욱 신속하고 조직적으로 의병을 전개해 갔는가하면 일반 백성과 노비들까지 대거 참여하는 대규모의 의병대가 조직되었고,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 사실 등을 알 수 있게 되었다.
18세기에 오면 문중활동 및 爲先사업이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이는 향촌사회에서 자신이나 문중이 속한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한 것으로, 중앙으로부터의 소외가 이런 활동을 더욱 부추겼을 것으로 본다. 그런데 그동안 병자년의 창의에 대한 평가가 올바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것은 의병에 참여했을지라도 전장에서 죽어야만 높은 평가를 받는 풍토에 속해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움한 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화의가 이루어져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은 그 공훈을 인정받지 못하고 빨리 잊어질 수밖에 없었다. 호남에서만 창의록이 5종이 나오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호남인이 기록정신도 투철했고, 자존의식도 강했기 때문에 가능했으리라고 본다.

목차

[초록]
1. 머리말
2. 丙子倡義와 성격
3. 『병자창의록』의 간행과 내용
4. 『병자창의록』의 의의
5.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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