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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년작을 중심으로

윤진영(한국학중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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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호랑이 그림은 조선후기의 翎毛畵와 民畵의 주제로 널리 그려진 그림이다. 여러 상징과 은유가 담긴 조선시대의 호랑이 그림은 畵員畵家의 양식과 民畵로 나뉘어져 다양한 층위를 이루며 그려졌다. 시기적으로는 화원화가들의 호도가 18세기에 주로 그려졌고, 민화 호도는 19세기에 제작된 사례가 많았다. 이 글에서는 제작시기가 밝혀진 虎圖를 다루면서 18세기에 이루어진 畵員樣式 호도의 특징과 변화과정을 중심에 두고자 했다. 그리고 17세기 이전의 자료적 공백을 보충할 수 있는 도상으로 15, 17세기 胸背의 虎豹 도상과 17~19세기에 전개된 四獸圖의 虎圖를 살펴보았다. 이는 일반 虎圖의 전통은 물론 민화 호랑이 그림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어 호도의 양식을 구체적이고 폭넓게 논의하는데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화원양식의 호랑이에 대해서는 金弘道와 몇몇 화원 화가들의 그림을 중심으로 定型을 제시한 연구가 있었다. 그러나 최근 明代 ‘出山虎圖’ 양식의 전래가 확인되고, 관련 도상이 소개됨으로써 화원들이 남긴 虎圖의 계통을 좀 더 자세히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화원양식 호도의 연구는 특히 민화 호랑이 그림을 살펴보기 위해 선행되어야 할 연구이다. 화원양식 虎圖를 범주로 하여 양식의 영향관계, 선후관계, 인과관계, 편년의 문제 등을 논의한 뒤, 이를 민화의 영역으로 확장하여 고찰해 나가는 것이 虎圖에 대한 미술사적 과제가 될 것이다.
본문에서 다룬 주요 내용은 첫째, 15~17세기 功臣畵像의 흉배에서 호랑이에 표범의 무늬를 습합시킨 도상을 확인했고, 이것이 조선말기의 민화 호랑이에까지 적용되는 현상을 살펴보았다. 호랑이와 표범을 한 마리의 동물로 표현할 때, 그 대표 형상은 호랑이가 아니라 표범과 습합된 도상으로 그려졌다. 또한 표범을 호랑이와 상생의 존재로 동일시한 당시의 보편적인 인식을 엿 볼 수 있었다.
둘째, 17세기 중엽 이후 19세기까지 호랑이 그림의 변모 과정을 山陵都監儀軌 四獸圖의 白虎를 통해 살펴보았다. 사수도의 백호는 17세기에서 19세기까지 호도의 유형과 흐름을 참고할 수 있는 자료이다. 다만 1630년 이전의 도상은 의궤가 전하지 않아 살필 수 없지만, 백호가 일반 호도의 양식과 영향 관계를 맺으며 전개된 점이 주목된다. 물론 백호는 일반 화원양식과 바로 互換할 수 없는 특수성이 있지만, 사수도의 호도가 기존의 호도 연구에 어떤 새로운 시사점을 주는가에 중점을 두었다. 산릉도감의궤에 나타난 백호의 네 형식은 동시기 호랑이 그림의 변화를 단계별로 검토하고 비교할 수 있는 기준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셋째, 18세기 명대 ‘出山虎圖’의 영향을 반영한 화원양식의 그림을 단계별로 정리해 보았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제작된 화원양식의 호도를 ‘출산호도’와 관련지어 고찰한 선행 연구는 아직 없었다. 명대 ‘출산호도’류의 도상이 이를 연결 지어 살펴보게 된 단초가 되었다. 명대 ‘출산호도’류의 도상은 18세기를 거치며 화원화가들이 한국화된 양식을 정립시켰고, 19세기 이후에는 이를 기반으로 민간 화가들이 민화의 장르로 대중화해 나갔다. 이처럼 한국적인 변용과 대중화는 호랑이 그림이 보여준 중요한 繪畵史的 의의이자 성과라 할 수 있다. 조선중·후기의 호랑이 그림에 대한 접근은 단순한 翎毛畵에 대한 관심을 넘어 한국적 미감과 대중적 선호로 전환시킨 대표적 회화양식의 탐색이라는 점에 그 의미를 둘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Ⅰ. 머리말
Ⅱ. 조선중기 虎豹 도상의 습합 현상
Ⅲ. 17~19세기 산릉도감의궤 虎圖의 형식과 특징
Ⅳ. 조선후기 화원양식 虎圖의 유형과 특징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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