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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선여 (충남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18호
발행연도
2010.4
수록면
69 - 103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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景德王代 神行에 의해 신라에 소개된 北宗禪은 당시 왕실세력의 관심을 받으며 전개되었다. 그러나 惠恭王代 신행이 입적하고 중대 왕권의 단절로 인한 정치사회적 혼란으로 인해 傳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憲德王代 南宗禪이 소개된 이후 중국과 마찬가지로 북종선은 남종선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지만 신라 하대 북종선의 존재를 확인해볼 수 있어 주목된다. 먼저 헌덕왕대 神行碑가 건립되었다. 신행비는 신행 제자들의 활동과 金獻貞과 그의 누이인 헌덕왕비가 후원을 하여 건립되었다. 따라서 신행 입적 이후 북종선은 그의 제자들을 통해 계승되었고 김헌정 가계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성주산문과 희양산문을 개창한 無染과 道憲의 수학과정에서도 북종선과 관련된 내용이 발견된다. 무염은 북종선 승려에게 처음 출가하였다. 도헌은 화엄종으로 출가한 후 북종선을 수학하였다. 이처럼 무염과 도헌에게 북종선이 사상적 영향을 주었다는 점은 신라 하대 선종의 전개과정에 있어 중요한 사실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내용들을 통해 헌덕왕대 지리산과 설악산 지역에서 북종선 승려들이 활동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도헌이 입적한 헌강왕대까지는 북종선이 하대 선종계에서 일정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신라 하대 북종선이 존재할 수 있었던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북종선은 사상적으로 敎宗과 그다지 큰 충돌이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으로 단월세력들의 후원이 중요하게 작용하였을 것 같다. 김헌정이 헌덕왕대 북종선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이후 禮英系는 선종에 대한 이해가 깊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특히 김헌정의 후손인 景文王系 왕실이 선종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해주었던 모습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다.
경문왕계는 선종승려들에 두루 관심을 가졌으며 특히 북종선과 연관된 무염과 도헌에 대해 더 큰 관심을 갖고 후원을 해 주었다. 이러한 모습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그 가계의 선조인 김헌정이 북종선의 단월로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 우선 작용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즉 선종에 대해 일찍이 이해하고 있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불교계와 정치사회적 상황을 정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憲德王代 神行禪師碑건립
Ⅲ. 신라 하대 禪師들의 北宗禪 수용
Ⅳ. 신라 하대 北宗禪과 景文王系 왕실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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