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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張日圭 (국민대학교)
저널정보
신라사학회 신라사학보 신라사학보 제18호
발행연도
2010.4
수록면
105 - 14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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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교종 불교의 전통 위에서 선종 불교가 크게 일어났던 신라 서남해안 일대에 분포한 선종 사찰의 선사상 속에서 법화신앙과 관음신앙의 흐름과 변화를 살피고, 그것이 장보고의 법화신앙과 어떤 관련을 가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신라 하대에 서남해안 일대에는 천관산을 중심으로 화순, 능성, 장흥, 강진, 완도, 영암 등지에 여러 사찰이 분포하였다. 그것은 처음에 의상, 영통(통영)등과 관련되었지만, 장보고가 활동하였던 시기에는 점차 혜철, 체징, 도윤 등과도 연결되었다. 이들은 입당이나 귀국 과정에서 모두 장보고 선단과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특히 쌍봉사에 머물다가 대안사로 이거한 혜철은 천태불교를 유념하였는데, 혜철 이후 쌍봉사에 머문 도윤은 물론 보림사에 주석한 체징은 쌍봉사의 법화신앙에 제법 영향을 받았다. 법화신앙을 포함한 선사상은 도선, 절중, 형미, 경보, 경유 등 문도들에 의해서 서남해안 일대에 널리 퍼져갔다.
서남해안 일대에 자리하였던 선문은 화엄이나 유식 등 교종 불교를 완전히 배척하지 않고 오히려 아우르면서 남종선사상을 펼쳐 나갔다. 혜철은 하늘과 땅에 기원하여 비를 내리는 神力을 보였고, 형미와 경유는 미륵의 강림을 위해 힘써 수행하는 求道者로 비유되는 등, 당시 선승들은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중생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서 노력하였다. 그들은 자신의 선사상에 석가정토와 미륵정토의 염원을 담았다. 다만 혜철은 서남해안 일대의 민심과 관련하여 미륵신앙을 아울렀지만, 쌍봉사의 법맥을 이은 절중은 특별히 관음신앙을 부각하였다. 그는 장보고의 본영에 가까운 천관산과 보림사를 중심으로 서남해안 일대 선문에 영향을 미쳤던 화엄사상을 유념하면서 실천적인 관음신앙과 함께 현세이익적인 법화신앙을 강조하였다.
신라 사람들은 적산법화원에 모여 《법화경》 강경법회를 열었다. 천태종 승려인 지원, 문감과 긴밀한 관계를 가졌던 성림이 법회의 법주를 맡았기에 법화원의 신라인들도 화엄사상을 아우르는 법화신앙에 익숙하였다. 장보고는 적산과 완도를 잇는 해상 무역을 전개하면서 상인들이 항해 중에 겪는 무서움과 어려움을 제거할 필요가 있었다. 절중은 파도치는 바다를 건널 때 관음보살로 상징되는 바다신을 만나 신라로 돌아왔다. 서남해안 일대의 선문에는 渡海의 위험을 해소하려고 특별히 관음신앙이 부각되었다. 장보고는 서남해안 일대 선문과 관련 속에서 천태사상과 화엄사상, 선사상을 아우르는 경향과 함께 실천적인 관음신앙을 아우르면서 현실을 강조하는 법화신앙을 유념하였다. 장보고 사후에도 이러한 불교사상이나 불교신앙은 서남해안 일대 선문의 법맥을 이은 선승에 의해서 고려 초의 교종 불교와 선종 불교에 영향을 미쳤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서남해안 일대 선종사찰 開山祖의 활동
Ⅲ. 서남해안 일대 禪僧의 선사상과 정토신앙
Ⅳ. 서남해안 일대 禪門의 정토신앙과 장보고 법화신앙의 관계
Ⅴ. 맺음말
참고문헌
日文抄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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