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학술저널

표지

DBpia에서 서비스 중인 논문에 한하여 피인용 수가 반영됩니다. 내서재에 논문을 담은 이용자 수의 총합입니다.

저작권자 요청에 따라 무료로 제공되는 논문입니다. 로그인 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초록·키워드 목차

호좌의진湖左義陳과 영남 지역 여러 의진의 연합은 피차가 곤경을 벗어나려는 시도에서 출발했다. 특히 봉기 직후에 경군京軍에게 패하면서 침체기를 겪던 안동의진ㆍ예안의진 등이 충청도와 강원지역에서 기세를 올리고 있던 호좌의진에 도움을 청하면서 본격적인 연합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강원도 쪽에서 활동하던 호좌의진의 소토장 서상렬이 영남으로 내려와 예천에서 일곱 고을의 의진을 모아 의병투쟁을 맹약하면서 예천회맹醴泉會盟이 추진되었다.
예천회맹이 이뤄지면서 친일적 지방관을 처단하는 호좌의진의 강경한 투쟁방식이 영남 쪽에서도 이뤄졌다. 그러나 연합의진을 총동원하여 추진한 태봉전투에서 패하면서 연합 투쟁은 곤경에 처하게 되었다. 훈련받지 못한 의병들, 회맹을 전후하여 이뤄진 영남쪽 의진의 지도체제 변동, 정교하지 못했던 의진간의 연합작전 등이 패전의 원인이었다.
이러한 검토의 과정에서 지역적 조건을 달리하는 의진 사이의 연합 배경, 연대의 핵심 주체였던 안동의진과 소토진 구성의 변화 모습, 전투의 구체적인 현장, 호좌의진에 패배의 원인이 돌아가고 있었다는 기존 연구의 착오 등을 확인하고 교정할 수 있었다. #의병 #호좌의진 #서상렬 #안동의진 #예안의진 #태봉전투 #예천회맹 #Righteous Army #Hojwa Righteous Army #Seo Sang-yeol #Andong Righteous Army #Yeoan Righteous Army #Battle of Taebong #Yeocheon Covenant

요약문
1. 머리말
2. 호좌의진과 영남 의진의 접촉
3. 안동의진의 재정비와 소토진의 구성
4. 예천 회맹과 태봉 전투
5.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저자의 논문

DBpia에서 서비스 중인 논문에 한하여 피인용 수가 반영됩니다.
논문의 정보가 복사되었습니다.
붙여넣기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