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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조응순 (영남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국악교육학회 국악교육 국악교육 제40집
발행연도
2015.12
수록면
165 - 184 (2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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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한국인으로서 중국에 가서 활동한 음악가이자 항일투사인 정율성을 논의한 작가론이다. 그의 삶과 예술가로서의 윤리는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윤리에는 개인윤리와 사회윤리가 있다고 전제할 때 이 두 윤리를 상호 조화시키려는 정신이 역사의식이다.
정율성에 대한 선행연구는 주로 그의 항일혁명투쟁을 부각시킨다. 그런데 항일투쟁, 즉 부도덕한 제국주의에 저항하는 것은 사회적 윤리를 뛰어넘는 보편적 인간윤리의 실천이다.
정율성의 성장과 항일출정에는 그의 가계가 계승해온 윤리관이 작용했다. 그는 중국에 가서 의열단이 세운 조선혁명군사정치학교에서 수학하며 사회주의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가 받아들인 것은 사회주의 이념이 아니라 사회주의적 윤리였다. 아울러 그는 소련인 음악교수 크릴노바에 사사하여 서양음악을 익히게 됨으로써 예술가의 삶을 열게 된다.
정율성은 당성이 약하다는 이유로 조직과 동료들에게 소외당하는 시련과 이탈리아 유학 문제로 인한 갈등을 동시에 겪는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상황에 따라 사회윤리와 개인윤리를 유연하게 적용하는 예술가로서의 윤리를 견지했다.
정율성은 당대 중국 항일인민혁명의 거점인 연안에 가서 <연안송>과 <팔로군행진곡> 등을 발표하여 성공함으로써 개인윤리를 사회윤리로 확대하지만 정풍운동으로 인해 개인윤리를 침해당하는 시련을 겪는다. 하지만 그는 이런 시련을 높은 수준의 역사의식과 예술가 윤리로 수용한다.
정율성은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태항산 전선에 투입되었다가 중일전쟁 종전 후 중국이 아닌 조국을 선택한다. 이 과정에서도 그는 사회윤리와 예술가의 윤리 양자 중 어느 하나도 저버리지 않았다.
정율성은 오늘날 중국인에게 대단한 추앙을 받는다. 그는 예술가로서 대성했지만 그가 추구한 예술의 목적이 승리를 거둔 것은 아니다. 예술은 윤리적인 것과 결부되지만 비윤리적인 것의 승리를 제제하지는 못하는 속성을 지닌다. 정율성은 360여 개 곡을 남겼고 그가 남긴 작품은 당대의 사회윤리뿐 아니라 그의 개인윤리와도 밀접하게 관련된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성장·출정과 선비윤리
Ⅲ. 의열단·조선혁명간부학교와 사회주의
Ⅳ. 민족윤리와 이념윤리의 조화, <5월의 노래>
Ⅴ. 연안, 인민혁명과 조국의 독립
Ⅵ. 개인윤리와 사회윤리의 불화, 정풍운동
Ⅶ.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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