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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정선 (인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49호
발행연도
2015.11
수록면
87 - 120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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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일제시기 조선인의 이름에 대한 조선총독부의 정책과 그 속에서 이름이 변화된 양상들을 조선 친족·상속 관습의 해석과 창출, 일본인과의 구별 및 동화라는 두 측면을 통해 살펴보았다. 먼저, 조선총독부는 조선인의 친족․상속에 관해서는 관습을 적용하기로 하고, 종족(宗族), 문중(門中)으로 표현되는 부계 혈연 집단과 종법적 가족 질서가 그 핵심이라고 해석하였다. 이에 따라 조선인의 이름에서도 부계 혈통의 표식인 성을 중시했고, 이는 다시 조선인과 일본인을 이름으로 쉽게 구별하려는 의도와 맞물려서 조선인이 일본인처럼 보이는 성명으로 개칭하는 것을 제한하는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이름에 대한 관행이 나이, 신분, 성별 등에 따라 서로 다른 가운데, 조선총독부가 모든 조선인은 하나의 본명을 가져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자, 이름들은 몇 가지 방향으로 변화되어 갔다. 대개 양반 출신 남성들은 아명의 존재와 그 개명을 인정받은 결과, 가족제도의 규정력 하에서 점차 항렬자를 포함한 한자어 이름으로 명명․개명되면서 자연히 일본인과도 이름으로 구별되었다. 반면, 대다수의 여성과 하층민들은 상대적으로 성리학적 가족제도로부터 자유로웠고 민적(호적)에 기재된 이름이 없거나 기재된 호칭을 이름으로 인정받지 못한 경우도 많았기 때문에, 새로 한자어 이름을 짓는 한편 일본인풍으로도 명명될 여지가 있었던 것이다. 또한 조선과 일본이 같은 한자 문화권에 속하는 관계상, 조선인풍으로도 일본인풍으로도 보일 수 있는 이름을 짓는 사람들도 있어서 양자의 구별이 반드시 명확한 것도 아니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1940년대 조선총독부는 조선에도 가(家) 제도가 정착되었다며 성과는 별도로 가의 표식인 씨를 사용하게 하고, 황국신민화를 위하여 일본인풍의 창씨, 일본인풍의 개씨․개명을 장려하여 조선인 이름의 일본인화를 촉진하였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조선 ‘구관’의 해석과 창출
3. 일본인 이름과의 구별 및 동화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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