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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재빈 (홍익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미술사교육학회 미술사학 美術史學 第38號
발행연도
2019.8
수록면
71 - 105 (35page)
DOI
10.14769/jkaahe.2019.08.38.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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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국가 의례에서 채화는 의례 공간을 장식하고, 참가자에게 나누어져 머리에 꽂아지는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했다. 본 논문은 그 중에서 꽃을 나누는 진화 · 산화의식과 참가자의의 머리에 올려진 잠화에 주목하였다. 우선 조선 초기의 의례를 『국조오례의』를 통해 살펴본 결과 진화 · 산화의식은 술과 음식을 나누는 연향의례에 주로 사용되었다. 진화 산화의식이 의례 중에 포함된 위치를 살펴보면 초기에는 의례 참석자의 상차림에 부속되었다. 이러한 기본 원칙은 1795년 정조가 혜경궁에게 올린 연향을 기점으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 진화 · 산화 의식이 상차림 의식과 분리되고, 꽃을 나누는 하나의 의식으로 독립된 것이 된 것이다. 19세기 들어 진화와 산화 의식에는 개별적인 음악과 무용, 행위 규범이 부가되었다. 왕과 왕세자의 진화 의식 동안에는 음악과 함께 ‘가인전목단’, ‘육화대’ ‘헌천화’ 등 꽃과 관련된 정재가 수반되었고, 또한 산화 의식 중에는 참가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면 나와서 무릎 꿇고 꽃을 받는다는 행위가 구체화되었다. 이처럼 19세기 이후 진화와 산화 의식은 정교화되고 독립된 의식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어 갔다. 이는 19세기 연향이 전반적으로 의식이 세분화되고 그 의식마다 음악 · 무용 등의 공연 요소가 강화되는 현상과도 맞닿아 있다.
진화 · 산화 의식을 통해 참가자들에게 받친 꽃은 머리에 꽂는 잠화가 되었다. 잠화는 연향의 기쁨과 화려함의 상징이었다. 따라서 재난과 상을 겪고 부득이하게 연향을 진행하여야 할 때는 잠화를 폐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영조에게 잠화를 권유하였던 세손 정조의 일화를 통해서 잠화는 효의 상징으로 비치기도 하였으며, 모든 참가자들이 꽃을 꽂고 돌아가는 모습을 통해 백성과 함께 즐기는 여민동락의 상징으로 인식되기도 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연향에서 꽃은 술이나 음식에 비해 부수적인 요소에 속했다. 그러나 궁중 행사도는 모든 참석자의 머리에 잠화를 그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았으며, 의궤도는 사용된 채화를 종류별로 다양하게 그려 기록하였다. 궁중행사도는 의례에 대한 사실적 기록임과 동시에 시각적인 재구성이다. 그런 의미에서 궁중행사도에서 꽃을 적극적으로 재현한 것은 실제로 채화의 사용이 늘어났음을 보여줌과 함께 이를 통해 기쁨과 화려함이라는 연향의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라고 할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조선시대 진화 · 산화 의식과 궁중행사도
Ⅲ. 잠화의 의미 · 종류와 의궤도
Ⅳ.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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