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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동방학지 동방학지 제182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65 - 19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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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지문사륙(東人之文四六)』권4에 실린 「사회부도배인표(謝回付逃背人表)」는 고려와 금 사이의 월경자(越境者) 처리에 관한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고려의 동북 지역에서 금으로 도망친 인물을 송환하는 과정에서 정보 전달과 행정 처리는 고려의 서북쪽 최전선의 행정기구인 영덕성(寧德城) 및 그곳과 마주보고 있는 금의 최전선 행정기구 내원성(來遠城) 사이에서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사건이 발생한 지점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의사소통이 이루어졌던 것을 보면 이 두 곳이 양국 사이의 상시적 접촉 창구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고려와 금은 국경을 길게 맞대고 있으면서도 12세기 내내 한 세기에 가깝게 큰 갈등을 겪지 않고 안정적인 외교관계를 유지하였다. 그 배경의 하나로 양국이 여러 층위의 의사소통 채널을 가동하고 있었던 점을 들 수 있다. 양국 중앙정부는 매년 정기적으로 사신을 주고받기는 했으나, 이들은 대부분 의례적인 목적을 띠고 있었다. 양국 사이에서 수시로 발생한 민감한 현안을 처리하는 데는 군주가 아니라 그보다 아래 층위에서 나섰다. 요동(遼東) 일대를 관리하는 금의 통치 거점이었던 동경(東京, 현재의 랴오닝성 랴오양)이 고려 정부와의 외교 교섭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다. 또한 국경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던 고려의 영덕성과 금의 내원성도 끊임없이 문서를 주고받으며 현안에 신속하게 대응하였다. 여러 소통 주체들이 역할을 나누어, 낮은 층위에서 구체적인 협상을 마무리하고, 높은 단계로 갈수록 논의의 내용을 추상화하고 우호적으로 수식하는 방식이었다. 이러한 여러 채널의 의사소통 구조는 11세기 고려와 거란의 관계에서 이미 마련되고 활발하게 가동되던 것이었다. 또한 이는 당시 금ㆍ송ㆍ고려ㆍ서하 등이 참여한 복잡한 국제관계 전반에서도 확인된다. 이것이 당시 여러 정치체들이 공존했던 국제질서가 비교적 평화롭게 유지될 수 있었던 하나의 비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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