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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19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285 - 31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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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대표적 친일파로 꼽히는 이광수의 해방 후 행적과 친일문제의 인식을 살펴보고, 반민특위의 처리과정을 규명한 글이다. 해방 후 1년여 동안 이광수는 친일 행위를 의식하여 대외 활동과 작품 활동을 삼가고 은둔의 시간을 보냈다. 친일 세력이 권력 요직에 기용되고 친일파 처단 요구가 좌우대립으로 희석되는 정국에서 안창호 전기 집필을 계기로 자신감을 회복하고 활동을 재개하였다. 단독정부 수립에 즈음하여 자신을 ‘반공주의자’, ‘민족주의자’임을 밝힌 후 좌파 세력을 극렬히 비난하고, 스스로 독립국 자유민으로 규정하면서 국가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였다. 그는 제헌국회가 반민처벌법을 제정하자, 자신의 친일 행위가 민족을 위한 행위였고, 조선인이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모두 친일 공범이므로 과거를 깨끗이 잊자고 주장하였다. 그는 반민특위에 체포되었으나 곧 석방되어 조사가 지연되었다. 뒤늦게 그의 행위가 피동적이었고, 공이 크다는 이유로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되었다. 특별검찰부도 ‘친일파 인재론’을 내세워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이광수의 처벌 무산은 이승만 정권과 친일 세력의 방해가 결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였고, 반민특위 구성원의 자격 부족과 그로 인한 친일파 처벌 의지의 약화도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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