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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29권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21 - 142 (2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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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1730년 고성 운흥사에서 화원 의겸(義謙)이 조성하고 현재 부산 내원정사에 소장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의 원 봉안 위치를 조성 상황 및 신앙과 관련하여 규명하였다. 의겸 작 내원정사 목조관음보살좌상은 당당한 체구와 윤왕좌의 자세, 상현좌가 전면에 표현된 점 등에서 불상의 협시로서가 아닌 단독상의 계획에서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또한 1730년의 불사에서 함께 조성된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이 상의 후불도로서 세트로 조성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관음보살도에 표현된 보살은 천의를 걸치고 두 다리를 교차시키는 형태로, 대의 차림에 윤왕좌를 한 내원정사 상과는 다른 형식을 보인다. 이처럼 관음후불도의 보살 형태가 전면의 보살상과 달리 나타나는 것은 18세기 이후의 작례에서는 매우 일반적이며, 의겸의 작례는 매우 이른 시기의 예에 해당한다. 고성 운흥사의 1730년 불사는 괘불도, 삼세불도, 감로도, 삼장보살도, 관음보 살도 및 본고에서 다룬 내원정사 관음보살상 등이 한 번에 조성된 대규모의 불사였다. 이는 당시 사찰에 큰 중창이 있었던 사실을 보여주며, 불화와 불상이 모두 일련의 계획에 따라 조성되고 봉안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내원정사 상 또한 봉안 전각에 대한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함께 조성된 관음보살도에 ‘법당’ 봉안으로 기록된 점, 또 운흥사의 건립 및 중창 기록에 관음전이나 원통전에 대한 기록이 전무하다는 점에서 본 상은 당시 주불전인 대웅전에 봉안되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또한 본 상이 단독 백의관음보살상이라는 점에서 조선후기의 백의관음에 대한 신앙과 의례의 실체를 짐작할 수 있다. 조선초부터 백의관음예참 의식은 악업을 참회하고 무량수국에 왕생하기를 발원하는 내용으로 시행되었으며, 이는 조선 후기에 영산작법에 포함되면서 망자추선과 영가천도의 기능으로 나타난다. 조선후기에 조성된 내원정사 상 역시 대웅전 안에서 이러한 망자추선의 역할을 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며, 이는 함께 조성된 운흥사 감로도에 동일한 역할을 하는 백의관음 도상이 생략된 점과 관련된다. 단독 존상과 후불도로 백의관음 도상이 강조되었으므로 중복된 도상을 같은 영가천도의 역할을 한 감로도에서 제외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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