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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한형주 (경희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역사민속학회 역사민속학 역사민속학 제58호
발행연도
2020.6
수록면
135 - 16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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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대흥사에는 임진왜란 때에 활약하였던 승병인 휴정, 유정. 처영을 모신 사당인 표충사가 있다. 절에서 유교적인 제사를 시행한 특이한 장소인 표충사는 정조 13년(1789년)에 왕으로부터의 사액이 내려지고 주위의 지방관들이 제관으로 유교적인 제사가 치러진 곳이다.
표충사의 제사를 보여주는 자료에는 〈표충사항례홀기〉가 있는데, 이것은 1789년이 아닌 후대에 제작된 것이라 고증하기에 어려움이 있다. 〈표충사향례홀기〉에는 이곳에서 진행된 제사의식과 제물들이 차려진 진설도가 남겨져 있지만 일반적인 유교형태는 아니었다. 진설도에 나오는 제수를 ‘12변 10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지만 종묘제, 문소전과 능제 그리고 서원에 이르기까지의 다양한 제사와 비교해 본 결과 일반적인 서원의 ‘4변 4두’를 따랐음을 알 수 있었다. 다만 유교적인 제사와 다르게 절에서 시행한 점, 국가의 통제가 느슨했던 점 등이 고려되어 그릇의 숫자에 맞추어 열거했던 것으로 보인다.
행례절차에는 제사 대상자를 ‘신위’로 표현하고, 올리는 것을 ‘술’을 사용한 해남 대흥사의 자료와 이를 ‘영위’, ‘차’로 각각 올린 용홍사의 자료가 차이가 있다. 대흥사의 자료가 1789년의 자료에 가깝게 쓴 것이고 용흥사의 자료는 그것보다는 좀 더 시간이 흐른 뒤에 기록되었음을 보여준다.
한편 제관은 1789년 봄에 왕명으로 예조정랑인 정기환이 헌관으로, 그리고 근처의 수령이 나머지 제관을 담당하였다. 그렇지만 가을 이후의 제사에는 헌관이하 지방관들이 보이지 않고 있는데, 이것은 이후의 제사에서 승려들이 대신 제관을 구성하였음을 보여준다.

목차

[국문요약]
1. 머리말
2. 임진왜란시 승장의 포상과 〈표충사〉의 사액과정
3. 표충사 제사의식의 검토
4. 맺음말
참고문헌

참고문헌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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