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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순남 (고려대학교 세종캠퍼스)
저널정보
호서사학회 역사와 담론 역사와 담론 第96輯
발행연도
2020.10
수록면
35 - 72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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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아버지 태종은 세자 양녕의 배웅을 받고 개경으로 옮겨갔다가 세자 충녕의 영접을 받으며 한양으로 돌아와 선위(禪位)하고 궁밖 별궁을 새로 지어 전전했다. 이 동안 세종은 아버지의 비호 아래 사왕(嗣王)으로서의 권위를 정립했다. 세종 역시 부왕 태종의 예에 따라 궁 밖으로 나가 피접했는데, 1442년(세종 24) 첨사원 설치를 계기로는 아예 세자에게 선위하고 별도의 궁을 지어 상왕으로 거처하려했다. 세종은 별궁의 신설이 무산되자 부왕(父王)이 지어 준 연희궁을 주로 삼되, 형제와 아들과 사위의 집을 전전하면서 궁 밖에 거처했다. 이 동안 세자는 아버지를 대신해 서무를 처결하고 이후에는 심지어 칭신하는 관료의 조참과 4배례까지 받음으로써 그 위상을 굳건히 다질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군신 갈등이 불거졌는데 세종은 이를 ‘별궁 이거’를 무기로 해소했다. 세종의 이런 행보는 아버지 태종으로부터 학습한 것으로 국왕 권력의 안정을 담보로 한 원만한 국정 운영을 가능케 했던 정치적 유용성을 띠었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태종의 경덕궁(敬德宮) 이어와 이궁(離宮)의 건설
Ⅲ. 연희궁(衍禧宮)의 신축과 세종의 궁 밖 피접(避接)
Ⅳ. 세종의 연희궁 이거와 사왕(嗣王) 세자
Ⅴ.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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