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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태훈 (연세대학교)
저널정보
역사실학회 역사와실학 歷史와實學 第73輯
발행연도
2020.11
수록면
269 - 296 (28page)
DOI
10.31335/HPTS.2020.11.73.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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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통치기 계몽운동과 친일정치운동을 대표했던 대한자강회와 일진회의 성립배경에는 1900년대 전반의 복잡한 정치상황이 존재하였다. 1899년 전제군주제를 선언하며 수립된 대한제국은 강력한 황제권에 바탕한 국가주도의 근대화 개혁을 추진했지만, 협소한 정치기반을 확대하지 못한 채, 체제비판세력을 철저히 배제, 억압하였고, 그 결과 대한제국정권과의 갈등관계가 심화된 독립협회와 동학출신 인물들이 체제도전 입장을 구체화하며 계몽운동단체와 친일단체를 결성하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이런 배경은 상이한 입장에도 불구하고 두단체 모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첫 번째는 대한제국 정권 교체를 가장 중요한 현실과제로 생각하게 하였다. 정권 교체 없이는 근대화개혁도, 정치적 생존도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두 번째는 일본에 대한 인식이었다. 정치적 협력경험이 제국주의 침략에 대한 인식을 가로막은 것이었다. 요컨대 일진회의 친일활동과 대한자강회의 타협적 정치활동은 대한제국과의 관계를 넘어 현실을 사고할 수 없었던 한말 정치세력들의 한계와 근대화 과정의 정치사회적 균열을 통합할 수 없었던 대한제국의 한계를 동시에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대한제국의 정치적 균열과 체제비판세력의 동향
Ⅲ. 을사보호조약 전후 대한제국 비판세력의 동향과 정치적 분화
Ⅳ.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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