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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학술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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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우영(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 2021.06
  • 99 - 134(36 pages)

DOI : 10.37280/JRISC.2021.06.5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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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목차

신라, 경주는 황룡과 추령에서 발원한 북천 혹은 알천이 여러 방향으로 옛 물길을 남겼다. 이후 신라가 건국되면서 본류와 옛 물길을 어떻게 치수하였는지는 신라 왕경의 도시 형성과 더불어 중요한 사항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고대 하천제방 연구는 현재까지는 활발하게 논의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이에, 삼국사기에서 보이는 홍수기록과 발굴조사에서 확인되는 관련 유구, 자연퇴적층과 해당 층의 연대측정 결과는 지금까지 세밀하게 분석되지 못한 고대 하천의 범위와 그와 연동되는 유구 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자료를 제시하였다.
이 글은 지금까지 구체적으로 논의가 적었던 북천의 하천제방을 비정해 보고자 한다. 해당 연구범위는 숲머리마을 인근에서 북천-서천(형산강) 합류부까지로 하였다. 치수는 국가가 주도하여 물을 다스리는 사업으로, 북천 본류와 옛 물길이 곳곳에 펼쳐진 경주에 고대 하천제방이 있었을 가능성은 크다.
먼저 삼국시대 홍수 기사를 단순히 물이 불어난 범람과 인명 ․ 재산피해가 있는 수해로 구분하였다. 이러한 구분으로 기사를 정리하면 삼국통일(676) 이전에 있었던 수해가 삼국통일 이후 있었던 수해보다 빈도가 많았다. 또한, 분황사, 황룡사, S1E1, 왕경숲, 구황동 원지, 발천에서 조사된 유구와 토층도를 검토하여 그 당시 하천의 범위를 추정하였고, 현재 북천은 고대 북천보다 약 4m 낮은 상태로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삼국유사 판적택 기사를 참고하여 분황사 북편에 금입택이 있었을 가능성에 주목하였다. 현재 북천 방향이 북동에서 북서로 곡류하는 양상은 고려시대 이후 생긴 流路로 판단하였다. 판적택의 위치와 북천 北岸에서 유일하게 조사된 추정 제방유구를 근거로 통일신라까지 북천이 흘렀던 본류는 현재 북천의 北岸인 동천동 일대에서 황성공원 남편 방향으로 추정하였다.
신라 왕경 연구에서 북천 또는 알천과 연동하여 형성과정을 논의한 연구는 부족하다. 이 글에서 도출한 연구 결과가 왕경 형성에 있어서 고지형 연구가 제시할 수 있는 기초자료로 활용되기를 기대한다. #하천제방 #홍수 #범람 #수해 #치수 #황룡사 광장과 도시유적 #발천 #판적택 #점토대 #고지형 #토양도 #고하천 #배후습지 #북천(알천) 범위 #공백 지점 #River Embankment #Flood Controlling #Hwangryongsa Temple #S1E1 #Balcheon Stream #PANJEOKTEAK #JEOMTODEA #Paleo Morphology Analysis #Soil Map #Paleo-channel #Back Swamp #Bukcheon (Alcheon) Stream Range #Blank Area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고대제방 연구사 및 하천 정의
Ⅲ. 문헌기록에서 범람과 수해의 구분
Ⅳ. 고고자료로 본 수해와 치수
Ⅴ. 황룡사 광장유적의 배후습지층 분석
Ⅵ. 고대 하천제방 추정
Ⅶ.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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