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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강산 (성균관대학교)
저널정보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한국독립운동사연구 한국독립운동사연구 제75집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177 - 20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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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관동대학살 이후 일본 내 조선인들의 대응방식을 밝히고 그 성격을 규명하려는 데 있다. 특히 재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선행연구는 위문반의 활동을 피학살자수를 밝히고자 하는 흐름 속에서 진행되어왔기에 식민권력과의 관계, 단체에 관한 기본정보, 조사결과 등이 불충분하게 규명되었다.
재동경이재조선동포위문반은 1923년 9월 조선에서 결성된 동경지방이재조선인구제회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특히 『동아일보』의 이상협은 지진이 일어난 다음날 일본으로 건너와 위문반 결성에 관여하였고, 구제회의 모금액을 전달하면서 향후 위문반 활동에 기여하였다.
위문반은 재해지역에서 생존하고 있던 조선인들을 구호하는 것, 학살 사실을 조사하는 것, 이상 두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그 목표는 조선의 구제회도 동일했다. 그러나 식민권력의 탄압으로 불가능해지면서, 위문반에게 그 사업을 승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위문반의 구호활동은 식민권력과 일정한 협력 속에 전개되었다. 그것은 식민권력이 대외적 상황을 의식할 수 밖에 없었던 상황과 밀접한 연관이 있으며, 위문반은 이를 잘 이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한편 조사활동은 감시와 탄압, 은폐 속에 전개되었다. 조선인 학살 사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었지만 두 달에 걸친 조사결과를 1923년 12월 <동경조선인대회>에서 발표하였다.
위문반의 조사결과 발표에서 피학살자 수를 밝힌 것뿐만 아니라 학살의 원인으로 ‘유언비어’를 지목하고, 그 책임자로서 일본정부를 명백하게 지목하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나아가 해외에 이 사실을 선전하기 위해 「虐殺」이라는 팸플릿을 작성하기도 했다. 이는 기존 연구에서 파악한 바 위문반을 ‘피학살자수를 조사한 단체’ 정도로 파악한 것을 넘어, 더욱 적극적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시사한다.

목차

1. 머리말
2. ‘연결고리’ 이상협
3. 위문반 결성과 활동
4. 조사결과의 발표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요약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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