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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백철 (계명대학교)
저널정보
경북대학교 영남문화연구원 영남학 영남학 제76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65 - 219 (5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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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에서는 영남차별론이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숙종 20년(1694) 갑술환국, 영조 4년(1728) 무신란, 순조 원년(1801) 신유박해 등이 남인이 중앙정계에서 퇴출되는 계기로 제시되곤 한다. 그런데 경상도는 조선시대 500년간 과거급제자가 서울을 제외하면 부동의 1위이다. 또한 과거급제에 그치지 않고 출사로 이어진 비율도 높았으며 그중 고위직 비중도 적지 않았다. 남인이 때때로 탄압을 받은 적은 있으나 영남인이 그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영남 차별론이 생긴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 상대적인 기억의 왜곡 현상이다. 여러 정치사건에도 불구하고 실제 영남 출사자가 감소하거나 중단되지 않았다. 심지어 세도정치기나 고종연간조차 영남인의 출사는 증가하였다. 이는 차별론의 시선과 전혀 다른 현실이다. 둘째, 과거 급제자 숫자의 일시적 변동이다. 18세기 영남 급제자 일부가 단기간에 감소하였고, 18-19세기 충청도와 평안도 숫자가 일시적으로 경상도를 앞서는 시점이 도래했다. 하지만 이 역시 남인 등용책과 더불어 기호지방 출사가 늘어났기 때문이었고 서북인 등용확대는 영남인 우대조치와 연동되어 등장하였으므로 영남차별과는 무관하였다. 오히려 공평한 인사정책과 지역균형 정책이 역설적으로 영남인 진출자 감소를 가져왔다. 셋째, 현재적 관점에서 지역차별을 논하면서 과거 역사에 투영하는 방식이다. 주로 지방의 정치권에서 선거철과 관련하여 자주 일어나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경상도가 지역차별을 받은 적은 거의 없었다. 명현을 가장 많이 배출하였고 경제적으로 매우 부유한 지역이었다. 단지 서울을 꿈꾸기 때문에 욕망에 비례하여 갈증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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