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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정신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3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123 - 168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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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조 대 이래 서인들은 이이와 성혼의 문묘종사를 성사시키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을 기울였다. 그런데 성혼은 남인・북인으로부터 기축옥사를 부당하게 확산시켜 원통한 죽음을 많이 야기한 소인배라는 혐의를 받고 있었고, 서인들은 이러한 혐의의 확산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었다. 성혼에게 덧씌워진 왕법과 명교의 죄인, 원옥(冤獄)을 확산시킨 소인배라는 혐의를 해소하지 못하면 성혼의 문묘종사는 명분을 마련할 수 없었고 결국 성사되기 어려웠다. 서인 학통(學統)의 연원이라 할 이이와 성혼을 함께 문묘종사 함으로써 자신들의 학문적・정치적 정통성을 확고히 하고자 하였던 서인은 성혼이 받았던 의혹을 함께 대처하여 풀어야 할 공동의 문제로 인식하였다. 이에 기축옥사의 성격을 ‘역옥(逆獄)’으로 규정하고 당시 성혼의 행적을 타당한 것으로 옹호하는 내용이 서인의 통일된 당론으로 마련되었다. 이 일은 윤선거・송시열을 필두로 한 서인 공동의 작업으로 이루어졌고, 「우계선생연보후설(牛溪先生年譜後說)」(1648)과 『율곡우계이선생연보(栗谷牛溪二先生年譜)』(1665)는 그 결과물이었다. 전자는 성혼을 둘러싼 의혹에 대해 성혼의 외손자인 윤선거가 스승인 김집에게 질정한 내용을 문답 형식으로 작성한 것이었고, 후자는 송시열이 편차 보완한 이이의 연보와 윤선거가 보완한 성혼의 연보를 합간한 것이었다. 서인 공동의 당론이 마련됨으로써 성혼의 위상은 재정립되었고, 숙종 8년 성혼은 이이와 함께 문묘에 종사되었다. 그러나 예송(禮訟)과 회니시비(懷尼是非)를 거치며 표면상 굳건한 것으로 보였던 서인의 결속력은 그 내부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서인 학문의 적통(嫡統)을 자부하였던 송시열은 윤선거・윤증 부자 대립하면서, 그들의 외가이자 소론의 학문적 태두가 되는 성혼에 대한 의혹을 다시 소환하였다. 논란은 기축옥사 당시 성혼의 행적뿐만 아니라 성문준, 신응구, 윤선거 등 성혼의 후손과 문인들의 문제, 성혼과 이이의 우열(優劣) 문제 등으로 전이되어 가며 새롭게 증폭되었다. 노・소 분기 과정에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보여준 송시열의 문제의식과 대응은 춘추 의리와 도학(道學)의 정통성을 교란시켰던 북인・남인에 이어 소론이라는 또 하나의 난신적자(亂臣賊子) 집단을 축출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서 발로된 것이었다. 성혼 및 그 문하의 정치적 행적에 대한 의혹이 재점화 되면서 서인의 당론은 다시 분열되었으며, 이러한 양상은 서인 내 노론과 소론의 정치적 분화 과정과 밀접히 연동하며 전개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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