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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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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함영대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저널정보
대동한문학회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대동한문학(大東漢文學) 제50권 제50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117 - 151 (3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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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구는 퇴계 이황 이전 조선전기 학자들의 『맹자』 이해의 면모를 검토하는 일련의 논문 가운데 하나이다. 이 글에서는 선초에서 성종대를 검토했다. 조선은 1392년에 개국되었고 1420년대에 이미 수입한 대전본 경서를 간행하였지만 맹자 주석서는 그로부터 150여년이나 뒤에 나타났다. 이는 고려말에 이미 원대 주자학을 수용하고, 세종 성종대에 상당한 수준의 성리서들이 제출된 현실에 비추어 이례적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孟子 註釋書의 탄생을 지연시킨 당대 조선의 학술적 환경을 몇 가지 논점으로 검토했다. 맹자학을 인식하는 선초 군주와 관료들의 인식이나 관각의 경향 등을 검토했으며, 실용적 학풍과 원대 성리학의 영향, 왕실의 불교애호, 그리고 유학자들의 텍스트에 대한 이해수준 등을 다각도로 살펴보았다. 그 결과 조선 초기의 학술환경이 맹자 주석서를 제출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다고 진단했다. 주자학의 교과서적 이해가 강요될 만한 교조적인 분위기가 아니었고, 과거 역시 경전공부와 직접 관련되는 明經보다는 製述 위주의 관습을 이어갔다. 문정왕후까지 이어진 왕실의 불교애호는 민간의 저변에 불교식 관습을 가능하게 했다. 무엇보다 語錄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주석서 저작에 필수적인 大全本 經書에 대한 정확한 독해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러한 복합적인 상황이 결과적으로 孟子學의 부진을 낳았다. 그러나 주석서의 제출을 단순히 학술상의 발전으로만 인식할 것은 아니다. 국가적 사상통일의 결과물로 제출된 교정청본 언해와 그에 따른 주석서의 폭발적인 증가는 경서주석이 학술논쟁이지만 일종의 국가의 통제 가운데 하나이고, 사상적 강박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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