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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인규 (동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0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 - 32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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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한국 불교계의 도교의 수용과 통섭이라는 주제로 거사(유자)와 고승의 도불 관련 기록을 검토하여 도교를 중심으로 도불교섭에 대하여 살펴본 연구이다. 본고에서 관련 기록을 검토한 거사는 고대의 최치원, 고려의 최당 이규보 원천석, 조선의 김시습 정렴 김극동 정두경 등이며, 고승은 고대의 원광 원효 지혜 형미, 고려의 의천 지눌 혜심 천책 일연, 조선의 기화 지엄 영관 휴정 유정 태능 경열 등이다. 이들을 통해 볼 때 한국 전근대 사회는 지향하는 바는 다소 다르더라도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공유하는 도불 및 유불도의 회통 내지 교섭을 지향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고구려 보장왕 때 도교가 수용되었는데,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도불(道佛) 대립이 야기되었으나 그 후 대부분의 시기에는 유불도가 공존하였다. 고려를 건국한 태조는 최초의 도교기관인 구요당을 건립하고 국가 최대의 행사인 불교의 연등회와 도교적인 팔관회를 매년 실시하였다. 그 후 예종대 북송의 도교를 받아들여 복원궁을 건립하는 등 국가적 차원의 교단도교가 성립 운용되었다. 그후 인종 대 묘청이 주장한 팔선 사상은 우리나라 고유의 도불 통섭의 사례라고 하겠다. 특히 도교의례인 관정도량과 영보도량이 왕실의 내원당에서 불교의례와 더불어 베풀어졌다. 조선시대에 숭유억불도(崇儒抑佛道) 체제하에 도교관서를 폐지하고 소격서만 존치시켰으며, 중종대 존페를 거듭하다가 임란후 폐치되어 과의도교는 공식으로 사라졌다. 조선초 명통사(明通寺)에서 맹인들이 승도들과 함께 도교 행사를 주관하게 하였는데, 이는 한국 유일의 것이다. 조선전기 퇴율 등 성리학자에게도 도가적 면모가 찾아지며, 조선후기 도교서의 간행 유통과 더불어 수련도교가 민간 저변으로 확대되었다. 유교문화의 시대적인 분위기가 심화되는 가운데 삼교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도 유교 우위의 경향으로 흘러갔다. 조선말 관제(關帝)신앙의 유행과 삼교합일의 묘련사와 무상단이라는 우리나라 민간 도교교단이 출현하였으며, 동학과 증산교 등으로 계승되었다. 이와같이 한국 전근대의 거사(유자)와 승려들은 시대적인 제약이 있었지만 도불 뿐만 아니라 유불 혹은 삼교의 수용 및 통섭을 하였으며, 이는 문화의 보편적 현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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