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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33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1 - 5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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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의 신라고분 조사는 일제의 침탈 이전부터 기초적인 조사가 시행되고 있었기 때문에대략 1900년대, 1910년대, 1920년대, 1930년 이후 등 4기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900년대는 근대적 고고학의 시작기로 외형적으로 돌출되어 나타나는 고건축과 유명한 고분등의 조사를 시작으로 지표조사의 수준에서 고고학조사가 시행되었다. 발굴된 고분도 있었으나이는 내부관찰이 용이한 고분에 한한 것이었다. 1910년대는 조선총독부의 조선고적조사 일환으로 신라고분이 본격적으로 조사되기 시작하였고, 아직 지표조사 수준을 벗어난 발굴과 보고서작성은 이 시기 후반대에 이루어졌다. 이 시기에 적석목곽묘, 횡혈식석실묘, 수혈식석곽묘 등신라고분의 내부구조가 밝혀진 것은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20년대는 금관총의 조사에서 신라를 대표하는 화려한 유물의 대량 출토로 조선고적조사의 관심이 경주에 쏠리게 되어 대규모의봉토분이 발굴된 일제강점기 신라고분 조사의 전성기이다. 따라서 대형 적석목곽묘의 구조가밝혀진 것은 이 시기의 성과라 할 것이다. 1930년 이후 신라고분 조사는 구제적인 성격의 발굴로전환되었고, 따라서 다양한 중소형분의 구조가 밝혀진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신라고분 조사에서 신라고분 묘제의 다양성과 내부구조가 확인되고, 독특한 성격의 적석목곽이라는 묘제의 특이성이 부각되었다. 그러나 당시 발굴 수준의 한계, 유물에대한 집착 등으로 인해 구조의 파악과 발굴 방법의 개선 등에는 커다란 진전이 있었다고 할수 없을 것 같다. 이는 현재의 검토를 통해 볼 때, 제대로 된 묘형의 인식, 축조 서열의 인식,봉분의 구성에 대한 인식 등이 확립되었을 만한데도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다. 따라서 일본인에 의해 발굴된 신라고분에 대한 적극적인 재검토가 반드시 이뤄져야 할 것으로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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