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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관 (충북대학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1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115 - 144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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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은 2004년 중국 섬서성 부평현에서 발굴된 태비 부여씨의 묘지명을 통해 태비 부여씨의 가계와 생애에 대해서 살펴보고, 당으로 끌려간 이후의 의자왕과 그 후손들의 가계를 복원해 본 것이다. 태비 부여씨 묘지는 가로 74㎝, 세로 70㎝의 장방형의 靑石을 가공하여 만들었으며, 묘지와 蓋의 두 짝으로 이루어져 있다. 태비 부여씨는 690년 백제 의자왕의 손자인 부여덕장의 長女로 태어났다. 711년에 당의 황족인 嗣王􆩷邕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718년에 嗣王妃로 책봉되었고, 731년에 다시 嗣王太妃 로 책봉되었다. 嗣王􆩷邕과의 사이에서 嗣王巨, 承昭, 承曦, 承晙, 承􅧻 등 다섯 아들을 두었고, 손자로 則之와 宗之를 두었다. 그리고 738년 8월 9일에 長安에서 49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고, 그 해 11월 15 일에 먼저 세상을 떠난 이옹과 합장하였다. 태비 부여씨 묘지는 백제 마지막 왕인 의자왕이 증조부, 부여융이 조부, 부여덕장이 아버지임을 알려주어, 의자왕 후손들의 가계를 복원할 수 있었다. 묘지를 통해서 부여융의 아들로 덕장이 있었다는 것을 새로이 밝혔고, 추가로 문선이 있음을 다른 기록과 비교함으로써 밝힐 수 있었다. 그리하여 부여융의 아들로 문사와 문선, 덕장이 있었다는 것을 알아냈다. 덕장에게는 태비 부여씨와 酷吏吉溫의 어머니가 되는 두 딸이있었다. 또한 부여융의 뒤를 이어 대방군왕으로 책봉된 부여경은 문사의 아들이었다. 이렇듯 태비 부여씨 묘지의 발견으로 의자왕과 그 후손들의 가계를 복원해 낼 수 있었다는 것은 백제사 연구의 중요한 성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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