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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송호정 (한국교원대학교)
저널정보
고조선단군학회 고조선단군학 고조선단군학 제46호
발행연도
2021.12
수록면
5 - 35 (31page)
DOI
10.18706/jgds.2021.12.4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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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세기 초 燕王 盧綰 밑에 있던 衛滿은 독자적으로 세력을 이끌고 漢의 동쪽 경계 遼東故塞를 나와 浿水를 건너 秦故空地 上下障 지역에 거주하다가 대동강 유역에 위치한 王儉城의 準王을 밀어내고 왕위에 올랐다. 그리고 위만이 처음 자리 잡은 고조선 중심지(왕검성 지역)는 일제 시기에 조사된 秥蟬縣神祠碑와 최근 소개된 樂浪 初元 4년명 木簡에 따르면 평양 대동강 유역이 분명하다.
위만은 처음 자기를 따라온 流移民들을 따로 중국적 질서에 편입시키거나 토착민과 구분하는 정책을 취하지 않았다. 이러한 점은 漢代 중국 남부지역에 세워진 남비엣의 역사와 유사하다. 漢의 주변국인 남비엣[南越]과 위만조선의 경우 비록 왕조의 출발은 中國系 官人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流移民과 土着民 사이에 구분되는 활동이나 종족적 차이를 보이지 않고 하나의 국가와 민족으로서 漢에 대항하면서 발전해 나갔다. 점차 위만은 중국으로부터 兵威財物을 취득함으로써 그 이웃의 小國을 침략하고, 마침내 眞番·臨屯·沃沮 등 주변 小國들을 복속시켜 사방 수천 리의 영역 국가로 발전할 수 있었다.
기원전 2세기 당시 정권을 잡은 衛滿은 주변 종족들이 중국의 국경을 침범하지 못하게 하고, 또 중국과 교통하는 것을 막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漢나라와 外臣 關係, 즉 君臣 關係를 맺었다. 나아가 한강 이남의 중서부 지역에 위치한 辰國 연맹체가 위만조선의 중개를 거치지 않고 漢과 직접 교섭을 시도하자 위만조선은 이를 방해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위만조선과 한 사이에 무력 충돌이 일어나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목차

국문초록
Ⅰ. 머리말
Ⅱ. 衛滿朝鮮의 성립과 국가적 특성
Ⅲ. 衛滿朝鮮과 주변 국가와의 관계
Ⅳ. 맺음말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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