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질문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은지 (국립민속박물관)
저널정보
한국민화학회 한국민화 한국민화 제17호
발행연도
2022.12
수록면
152 - 173 (22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질문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고는 조선시대 궁중에서 제작된 모란병이 민간에 유출된 경로를 추적하고, 민간에서 제작된 궁중 양식의 모란병의 유통 배경을 추론하는 글이다. 궁중 모란병은 조선시대 궁중의 대표적인 장식 병풍으로 왕실과의 밀접한 관련 하에 제작, 소용되었으며 17세기 무렵부터 민간에 전해지기 시작하였다.
17세기 정안옹주와 박미의 혼례와 같이 궁중에서 사가로 출가하는 왕녀 혼례 때 부마에게 궁중에서 제작한 모란병이 하사되었고, 18세기 후반 민간의 혼례를 행하는 과정에서 제용감이 보관한 모란병이 민간에 대여되면서 궁중 모란병은 민간에 시차 없이 공유될 수 있었다. 특히 18세기 후반 궁중 모란병이 민간에 대여될 수 있었던 결정적인 계기는 당시 왕실의 열악한 재정 상황의 극복 방안으로 민간 자본의 유입을 허용하게 되면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이때 제용감의 모란병이 그 대상이 된 것에는 제용감 관아의 지리적 위치, 낮은 품질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무렵부터 광통교 일대에 형성된 문화 유통 공간에서는 다양한 계층의 수요자를 대상으로 서화, 도서가 판매되었다. 이러한 광통교 일대의 유통 공간은 도화서와 인접한 곳에 자리하였고, 이곳에서 궁중 화원들은 공적 활동만으로 충족되지 않는 자신들의 경제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 사적 수요에 응하며 궁중 양식으로 제작한 다양한 화제의 그림을 판매하였다. 그중에서도 모란병의 경우 현존하는 유물 수가 상당하여 여러 계층에서 모란병에 대한 수요가 있었음을 알려주며, 나아가 당시 많은 수요에 부합하도록 대량 제작되었음을 짐작하게 한다.
특히 현전하는 모란병 유물 중에는 궁중 소용이 아님에도 궁중 양식으로 제작된 것이 다수 확인되는데, 이는 궁중에서 모란병 기화화원으로 활동한 화원들이 궁중 양식의 모란병을 민간에서 활발히 제작하였음을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모란병 기화화원으로 활동한 궁중 화원 중 백두용의 경우 한남서림을 경영하면서 그림을 제작해 판매한 이력이 존재해 궁중 양식의 모란병을 자신의 점포에서 판매하였을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나아가 본고는 현전하는 모란병 유물들을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하고 그 특징을 살펴 궁중 화원들이 민간에 유통하였을 모란병을 구체화하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 화가가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의 경우 궁중 화원이 제작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에 비해 청색 안료의 사용량이 적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민간 화가들이 자신들의 주요 고객이었을 일반 중인 혹은 평민층을 염두에 두어 고가의 청색 안료의 사용을 최소화하여 모란병을 제작, 판매한 결과라 추정해볼 수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17ㆍ18세기 궁중 모란병의 하사와 대여
Ⅲ. 19ㆍ20세기 모란병 기화화원의 私的 賣畵 활동
Ⅳ. 모란병 유물의 현황과 유형
Ⅴ.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이 논문과 함께 이용한 논문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