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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량군 (전주대학교) 안정훈 (전주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중국소설학회 중국소설논총 중국소설논총 제62호
발행연도
2020.12
수록면
197 - 212 (1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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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명청 시기의 대표적인 문언필기 작품인 《剪燈新話》와 《聊齋志異》가 조선에 전파되었던 양상에 대해 고찰하고, 이를 통해 두 작품의 조선에서의 수용 양상이 달랐던 원인에 대해 고찰해 본 논문이다. 《剪燈新話》는 明代 초기에 약 200여 년 정도 유행한 뒤에는 점점 독자들의 시선으로부터 멀어졌으나, 오히려 한국과 일본에서는 크게 환영을 받아 현재까지도 가장 많이 수용된 작품이었던 데 반해, 《聊齋志異》는 淸代에 출간되자마자 많은 독자들을 사로잡았고 이에 대한 연구 열기 또한 현재까지도 사그라들지 않았던 명작이었지만, 한국에서는 당시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였고, 20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번역과 연구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처럼 국내의 흥행과 해외에서의 수용의 정도가 달랐던 원인은 대략 세 가지 정도로 요약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로 문화정책의 변화를 꼽을 수 있다. 《剪燈新話》의 창작과 전파는 주요하게는 명대에 집중되어 있는데, 이 시기는 소설에 대한 금지와 징계가 상대적으로 약화되어 《剪燈新話》가 민간에 광범위하게 유통될 수 있었으며 해외의 전파 역시 활발하게 이루어 질 수 있었다. 반면, 청나라 때에는 소설의 유통에 대한 통제가 강화되어 《聊齋志異》의 해외 전파에 장애가 되었다. 두 번째로 사회적 배경의 변화를 들 수 있다. 《剪燈新話》는 중국이 동아시아 문화권에 중심적인 지위를 누리고 있을 때 창작되었기에 중국의 명나라와 조선의 외교관계가 활발하던 분위기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조선 초기의 대 중국 문화수입 정책 역시 개방적이어서 중국 문화의 수용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러나 《聊齋志異》가 출판되었던 청나라 시기 조선은 망해버린 명나라를 대신하여 성리학의 정통 후계자임을 자부하면서 청나라와의 문화적 교류를 엄금하였고, 이에 따라 중국의 필기소설이 조선에 유입되는 현상 또한 《剪燈新話》 시기와는 확연히 다르게 위축되었던 것이다. 세 번째로 수용 주체의 변화를 들 수 있다. 명나라 때는 백화 통속소설이 발전하고는 있었지만, 여전히 문언소설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조선 시대 전기에는 중국소설의 독자층은 일정한 한문 소양을 가진 문인층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이들 문인층들은 《剪燈新話》의 주요한 독자군이 되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면서 상품경제의 발전에 따라 坊刻本과 諺文(한글)이 유행하게 되고 소설의 소비층이 확대됨에 따라서 이들은 고도의 문화적 소양이 필요한 문언필기인 《聊齋志異》를 선택하기 보다는 좀 더 쉬운 백화문의 대중 소설 작품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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