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미숙 (목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교회사학회 한국교회사학회지 한국교회사학회지 제45호
발행연도
2016.12
수록면
217 - 253 (37page)
DOI
https://doi.org/10.22254/kchs.2016.45.06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한국의 전통적인 커뮤니케이션 장소였던 장시(market)가 구한말 초기 선교사들의 전도활동의 중요한 토대가 되었음을 밝히고, 장시가복음의 장소로 변화하는 과정을 탐색하려는 목적에서 집필되었다. 선교사윌리엄 블레어(William Blair)는 복음 전도지로서 “장터는 사람들을 만나기좋은 장소이며, 복음을 전하기 안성맞춤인 곳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15세기 중엽에 설치되기 시작하여 17세기에 조선 전역에 확산된 서울 뿐 아니라 지방 포구를 중심으로 상품 유통의 중요한 발달을 가져왔다. 장시는 조선 사회의 경제적 활성화를 견인하였을 뿐 아니라 신문물, 신문화의 전파통로이기도 하였고, 이를 통해 사회 변혁을 이끄는 기능도 하였다. 초기 입국 선교사들은 이러한 장시의 특성을 파악하고 복음 전파의 중심지로 적극 활용하였다. 로스는 국제 무역 장시였던 만주의 ‘고려문’에서조선의 상인들을 만나 기독교를 전하고 성경을 번역하였으며, 국경 무역장시인 의주를 통해 한반도에 복음이 들어오는 데에 큰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후 1885년 언더우드, 아펜젤러 등의 선교사들도 한국의 풍토와 민정을파악하기 위하여 장시를 방문하였고, 19세기 말에는 개항지의 확대와 더불어 전국 장터에 속속들이 선교 거점이 마련되었다. 이처럼 장시는 조선에서의 선교 활동의 중요한 거점이었다. 기독교가 이땅에 들어와 우리 민족과 만나 어우러져 숨쉬기 시작한 토대는 바로 조선시대 소통의 장이었던 장시였던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