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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배근흥 (섬서사범대학)
저널정보
공주대학교 백제문화연구소 백제문화 백제문화 제54호
발행연도
2016.2
수록면
91 - 11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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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1월, 한국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행한 익산시 미륵사지 西塔 수리 발굴 조사 과정에서 사리함을 발견했는데, 그 사리함에서 693년 제작된 <사리봉안기>를 포함하여 백제 말기의 많은 유물이 나왔다. 2년 후인 2011년 9월, 공주대 박물관 고고발굴단이 공주시 공산성 유적에 대한 4차 발굴조사 보고회를 열고, “行貞觀十九年卄一日” 명문을 가진 가죽 칠갑의 출토 사실을 알리고, 나아가 이 칠갑의 다른 한자 명문과 당나라 칼 등에 대한 내용을 공포하였다. 또한, 2014년 9월에는 제7차 출토 발굴의 성과로서 새로운 가죽 칠갑의 명문을 소개했다. 미륵사 서탑 <사리봉안기>와 공산성 유지에서 두 차례에 걸쳐 발견된 한자 명문 등은 모두 한국의 고고학계 및 역사학계에 많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필자는 한국 학자들의 연구 성과를 검토함과 동시에 중국과 한국의 현존하는 문자자료를 결합하여, 미륵사 서탑의 <사리봉안기>는 한국의 역사서인 『삼국유사』에 기록된 ‘鄕傳’ 사료, 즉 백제 무왕과 신라 선화공주의 사랑 이야기를 뒤집은 것이며, 이 시기 신라와 백제 관계를 살필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금석사료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주 공산성에서 출토한 “行貞觀十九年” 등의 명문이 있는 가죽 칠갑은 관련 문헌사료가 매우 적기 때문에 이에 대한 한중학계의 해석이 매우 다양하다. 때문에 이런 견해들은 앞으로 더 논의되어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필자는 이 유물이 발견된 저수지의 위치, 그리고 붉은색으로 쓴 커다란 명문으로 미루어 칠갑 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몇 년 후 그 위쪽에 저수지를 조성했기 때문에 이 유물들이 저수지 바닥에서 출토되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다시 말해 이 유물들은 백제 멸망 10여 년 전, 당과 백제의 우호관계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백제 멸망 이후 당은 이 지역에 웅진도독부의 치소를 두고 통치하였는데, 상술한 저수지가 여기에 만들어진 것은 아마도 공산성 내의 면적이 협소했던 것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가장 최근에 발견된 고고학 사료로서 상술한 두 건의 자료는, 비록 일부 문제들에 대해서는 이후의 심층 연구를 기다려야 하겠지만, 7세기 중엽 당과 한반도 정권의 관계를 심도 있게 논의할 수 있는 중요한 논거임에는 틀림없다. 이후 학계의 지속적인 연구와 논의를 통해 새로운 사료가 부단히 출현하고, 이에 대한 엄밀하고 정확한 고고 발굴보고서가 빠른 시일 안에 출판된다면, 여러 문제들에 대한 해결 역시 이른 시기에 이뤄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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