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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장단위 (중국 남경사범대학)
저널정보
한중인문학회 한중인문학연구 한중인문학연구 제84호
발행연도
2024.9
수록면
417 - 440 (24page)
DOI
https://doi.org/10.26528/kochih.2024.8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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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1971년 발굴된 이후 일치된 견해를 내지 못한 무령왕 묘지석의 맨 마지막 글자인 ‘ ’에 대해 중국 동진 남조시기의 출토 사례와 비교·검토함으로써 새롭게 판독하고 해석을 시도하고자 하였다.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 그 중요성과 가치성을 언급할 때 무엇보다 무령왕과 왕비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는 2매의 묘지석은 가장 으뜸이다. 묘지석의 발견으로 백제사 연구에 대해 시간적인 좌표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한편 2매의 묘지석 명문에 따르면 무령왕은 62세 되는 523년에 사망했고,525년에 왕릉에 안장하였으며,왕비는 천명대로 살다 526년에 사망하여 529년에 왕릉에 옮기어 무령왕과 같이 합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때에는 양나라 무제의 재위기간(502─549년)이었다. 무령왕의 왕위 계승자인 성왕은 國喪 기간에 양무제를 위해 대통사를 영건하기도 하였고 백제 지배계층의 주 무덤 양식인 석실묘 대신에 남조 양식인 전실묘를 축조하였다. 뿐만 아니라 무령왕릉의 수많은 부장품 중에 남조로부터 수입된 것도 적지 않다. 그러므로 무령왕릉을 연구하는데 중국 동진 남조와의 비교연구는 필수불가결하다. 지금까지 학계에는 ‘’에 대해 ‘穴’,‘冢’,‘도교의 부적’,‘印’,‘家’,‘尔’,‘了’ 등으로 보고 있어 판독과 해석이 분분하다. 한편 최근에는 발굴을 통해 동진 남조시기에 관한 출토 자료가 늘어나 비슷한 시기에 축조된 무령왕릉에 대해 심층적인 비교 연구의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선학 연구를 보완시킬 수도 있다. 이 글에서는 ‘ ’에 대해 판독 및 해석했을 때 우선 ‘’의 구조적 특징의 분석을 통해 ‘冢’字와 字型的으로 유사하다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다음 동진 남조시기의 서예 작품,매지권,명문 벽돌 등에 나온 ‘冢’字와 비교하여 서체,서풍,문장의 구조 등 서로 간에 이질점이 없다는 결과를 얻었다. 또한 무령왕 묘지석의 마지막 글자인 ‘冢’字는 묘지석 뒷면의 陵域圖 및 왕비 묘지석 뒷면의 매지권과 문맥상으로 상통하기도 한다. 따라서 ‘’는 바로 ‘冢’字이고 무령왕의 葬地(무령왕릉)를 의미하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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