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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적 관점에서 본 조선통신사, 그 기록의 허와 실

A Critical Analylysis of Joseon Tongshinsa’s Travel Sketches in terms of a diplomatic history
한국문학과예술 제2집, 2008.9, 111-157 (47 p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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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通信使의 명칭은 중국이나 일본에는 없고, 일본에 파견했던 사절에만 붙여졌다. 통신사란 漢字音 그대로, 통할 通, 믿을 信, 사절 使로, 믿음을 통하는 사절, 또는 믿음을 통하기 위한 사절이다. 조선시대 전 기간을 거쳐 막부장군에게 총 32회(전기 20회, 후기 12회)의 사신이 파견되었다. 이 가운데 사행록이 남아있는 것은 전기 4회와 후기 12회 등 총 16회의 사행이며, 현존하는 것은 43편에 이른다.
이글에서는 43편 중 4편의 사행록을 대상으로 그 虛와 實을 外交史의 측면에서 재조명하고자 했다. 이들 사행록을 택한 이유는 송희경 『日本行錄』은 조선초기 대일관계 성립기의 사행록이며, 조선시대 최초의 대일사행록이라는 점, 김성일 『海?錄』은 退溪와 栗谷에 의해 朱子學이 심화되어 가는 시기로 임진왜란 직전이라는 점, 元重擧『乘?錄』과 『和國志』는 통신사행의 최절정기라 할 수 있는 18세기 후반으로 江戶까지 왕래한 마지막 통신사였다는 점 등에서 그 특징을 추출해 낼 수 있다.
이들 사행록은 각 사행이 처한 시대적 상황을 충분히 표출하면서, 각기 외교사행의 목적에 충실했다. 송희경의 경우, 그가 기록한 일본의 정치상황은 조선초기 대일정책을 수립하는 데 커다란 기여를 했으며, 김성일의 경우, 임란발발에 대한 부정적인 보고로 오명을 남기기도 했지만, 국체를 지키려는 강직한 의지는 나름대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 그리고 원중거의 경우는 北學派 내지 燕巖一派의 일본관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정약용과 김정희에게 까지 이어졌다.
따라서 통신사 사행기록은 각 시대마다 일본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조선시대 전기간을 통해 「華夷觀」적인 세계관을 탈피하지 못했고, 문화우월주의적인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이러한 장애로 인해 결국은 일본을 객관적이고 상대적으로 인식할 수 없었으며, 변화하는 한일 관계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힘을 자생적으로 키워갈 수 없었다.
그러나 이들 사행록에 나타나는 각자의 화이관도 시대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송희경의 경우, 조선 초기 小中華論이 싹터가는 시기여서, 일본의 문화나 풍속에 대해 지나치게 이적시하거나 배타적인 인식은 적었다. 그러나 退溪ㆍ栗谷에 의해 주자학이 심화되고 禮的 秩序가 강조되는 김성일의 시기에 와서는 철저한 화이론적 입장에서 일본을 夷狄視했고, 화이론적 명분론에 집착한 나머지 일본의 사회나 문화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가 결여되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원중거의 사행록은 18세기 실학시대의 산물로 평가될 만큼 화이관의 변화를 보여준다. 조선인과 일본인의 동질성을 밝히고, 조선인과 비교하여 일본인의 장점을 기술했다. 또한 천황과 막부장군과의 관계를 직시하여 尊王運動을 예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通信有五利’와 ‘通信行中有三大弊’를 통해 통신사의 목적과 폐단을 직시하여 통신사제도를 개선할 것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사행록에 나타나는 ‘華夷觀’을 역사적으로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인가?. 그들의 대일인식이 華夷觀에 기초한다고 해서, 무조건 현실성이 결여되었다고 치부해 버릴 것인가?. 이러한 점에서 조선시대의 절대적인 가치관이었던 朱子學적 세계관을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인가. 그 점을 따지지 않고, 華夷觀만을 매도한다면, 혹 컴퓨터의 운영체계가 다른 일본의 프로그램을 그대로 한국에서 돌릴 수 있다는 모순은 없는지. 통신사 사행록의 허와 실도 이러한 측면에서 파악해야 하며, 현재의 한일관계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한다.

There exists no appellation of Tongsinsa in China or Japan, which was named for the delegation dispatched to Japan. Tongsinsa[通信使]-Tong[通] means to communicate with each other; Sin[信] means to have a faith, and Sa[使] is a delegation in its phonological sound of Chinese itself- was a delegation who communicated with others[Japanese] on the basis of faith, or the one whose aim was to communicate with others[Japanese] on faith. Throughout the whole period of Joseon, the total frequencies of sending a Joseon delegation to the shogunate government in Japanwere found to be 32 times[20 times during the first half period of Joseon, and 12 times during the second half of Joseon]. Among these still remain a total of travel sketches for 16-time delegation activities including 4-time travel accounts during the first half and 12-time travel sketches during the second half, and the extant number of travel accounts in Japan amounts to 43 volumes.
This research is aimed at re-configuring facts and fictions for the 4-volume-chronicle out of 43 volumes in terms of a diplomatic history. The reason for adopting these four chronicles for delegation"s doings is due to the fact that the characteristics of delegation"s activities can be abstracted in that NipponHaengRok(『日本行錄』)by Song,Hee-kyung is the one for the early period of Joseon, when diplomatic ties with Japan was set up and also the first chronicle of delegation"s doings with Japan; Haesarok(『海?錄』)by Kim,Seong-il, contains the historical aspects during the period when Sung Confucianism was getting at the height of its scholastic depth by Taeke(退溪) and Yulgok(栗谷)just prior to the Imjin War[1592][Japanese invasion of Korea in 1592], and SungSaRok(『乘?錄』)and Hwagukji(『和國志』)were written by Won, Jungkoe during the latter part of the 18th century which is called the high noon of Tongsinsa"s doings and these two volumes of chronicles contain the last delegation"s going and coming as far as Edo(江戶).
These chronicles of delegation"s doings were faithful to individual diplomatic activities while adequately expressing the circumstances of the period with which each delegation was faced. In case of Song, Heekyung, his records of Japanese political circumstances greatly contributed to setting up the policy with Japanduring the early period of Joseon; in case of Kim, Seongil, though ill-famed for negative report on the breaking out of the Imjin War, is highly evaluated for his staunch volition to safeguard the national polity according to his lights. In addition, in case of Wonjungkoe, he had a great effect on the formation of Bukhak School(北學派) and Yeonam School"s(燕巖學派) view of Japan, and such trend was handed over to Jeong, Yakyong(丁若鏞) and Kim, Jeonghee(金正喜).
Accordingly, the chronicle of Tonsinsa"s doings can be assessed to make a factual description of Japanese aspects of individual periods. However, throughout the whole period of Joseon, these chronicles failed to deviate from a view of the world based on the traditional thought of distinction between Han China and the other barbarian(華夷觀), nor did they escape from the pro-culture supremacy consciousness. Due to these obstacles, Joseon failed to be aware of Japan objectively and relatively after all; besides, Joseon couldn"t enrich its strength to cope actively with the transitory relations between Korea and Japan spontaneously.
However, there appears a considerable difference in individual view of discerning Chinese tribes from barbarians as specified in the chronicles of Tongsinsa"s doings according to each period.
In case of Song, heekyung, he didn"t think of Japanese culture and traditions as excessively barbarous, nor did he have much exclusive consciousness of them.
However, with the deepening of Sung Confucianims by Taege and Yulgok, and in the Kim, Sungil"s period in which ceremonial order was emphasized, Japan was regarded as a barbarian at the position of thorough idea of discerning China from barbarians and subsequently, it came to be hard to get away from the criticism for lack of realistic understanding of Japanese society and culture due to excessively adhering to justification of the idea of discerning China from barbarians.
In the meantime, the travel sketches written by Won, Jungkeo shows a transition of the idea of discerning China from barbarians as much as tobe evaluated as an outcome of the 18th-century practical science period. It managed to clarify the homogeneity between Joseon people and Japanese counterpart and mentioned the merits of Japanese people in comparison with Joseon people. In addition, it forecast the occurrence of "respect-King movement" by gazing straightforwardly at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Emperor of Japan and shogun of Japanese feudal government. Also, it suggested the improvement of Tongsinsa system by looking straight at the aims and evils of Tongsinsa through the five advantages of Tongsinsa and its three evils .
Then, how should we evaluate the " the traditional thought of distinction between Han China and the other barbarian" specified in travel sketches in a historical sense? Would it be possibly right to just keep their lack of reality in mind simply because their consciousness of Japan was based on the traditional thought of distinction between Han China and the other barbarian? In this context, is there any way to free themselves from a Sung-Confucianism-based view of the world which was once absolute values during the Joseon period. Provided we rail against the traditional thought of distinction between Han China and the other barbarian alone instead of calling it in question, then this research wonders if there isn"t any contradiction that a Japanese program, whose computer operating system is different from ours, could be operated as it is in Korea...
Conclusively, the fact and fiction of travel sketches of a delegation dispatched to Japan should be grasped in this context, which. this research thinks, has a lot of implications in the current relationships between Korea and Japan.

목차
1. 머리말
2. 통신사의 개념
3. 통신사의 기록과 내용
4. 기록의 허와 실
5. 맺음말
참고문헌
국문초록
〈Abstract〉
토론문
토론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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