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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논문은 신자유주의 성과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호소하는 어려움에 응답하는 목회돌봄의 방향을 모색하는 시도이다. 필자들은 돌보는 사람이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모두 무한경쟁의 압박에 놓여 있음을 직시하면서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이 우리 시대에 필요한 돌봄이라고 제시한다.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은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제공하는 돌봄이 아니라, 놀이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돌보는 사람이나 돌봄을 받는 사람이 함께 놀이에 참여할 수 있는 놀이공간을 만들어 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 주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크리스토퍼 볼라스의 ‘정상증후군’ 개념을 통하여 돌봄의 실천 현장에 드리워진 성과사회의 그림자를 분석한다. 정상증후군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돌봄의 본질이 무엇인지 접근하고자 한다. 볼라스에 의하면 정상증후군이란 주체가 자신의 고유한 이디엄을 발현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를 말하며, 그 결과 주관적 세계가 텅 비어버리게 되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기를 포기해버리고 자신을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서 사용되는 하나의 대상처럼 여기는 상태이다. 성과사회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디엄의 발현과 주관적 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데 집중하도록 압박한다. 이처럼 성과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자기착취에 매인 주체는 자유롭고 진정한 놀이를 즐기지 못한다. 멋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실패로 점철되었던 실험의 과정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결과물 뒤에 숨겨져야 한다. 성과사회의 돌봄조차 주체의 필요보다 아름다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돌봄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돌봄의 현실이다. 돌봄의 과정이 사라졌다. 성과라는 결과만이 보여야 할 뿐이다. 그리하여 필자들은 성과사회에서의 주체가 자유롭고 생생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돌봄은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이라고 주장하며, 돌봄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볼라스와 도널드 위니캇과 대화를 이어간다. 돌보는 사람 또한 성과사회의 주체이다. 돌본다는 것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돌봄의 관계가 동반자의 관계로 변화될 때에만 상호놀이가 가능하게 된다. 상호놀이는 돌봄의 과정에 머물도록 하는데, 이 돌봄의 과정에는 창조와 파괴, 사랑과 공격성의 역동에 대한 인정과 수용의 과정이 포함된다. 이러한 수용과 인정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디엄이 발현되고, 나아가 자기가 회복되고 확장된다. 이는 돌봄의 동반자 모두에게 충분히 좋은 관계 경험이 될 것이다. 필자들은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은 상담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머니 유아 사이의 놀이가 문화로 확장되어 나간다고 보았던 위니캇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의 목회돌봄은 상호놀이가 되어야 한다. 상담실에서 시작된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은 성과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회복시켜 나가는 새로운 문화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 주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크리스토퍼 볼라스의 ‘정상증후군’ 개념을 통하여 돌봄의 실천 현장에 드리워진 성과사회의 그림자를 분석한다. 정상증후군이라는 개념을 통해 성과사회에서 사람들이 요구하는 돌봄의 본질이 무엇인지 접근하고자 한다. 볼라스에 의하면 정상증후군이란 주체가 자신의 고유한 이디엄을 발현하는 것을 포기한 상태를 말하며, 그 결과 주관적 세계가 텅 비어버리게 되고, 스스로가 주체가 되기를 포기해버리고 자신을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서 사용되는 하나의 대상처럼 여기는 상태이다. 성과사회에는 개인들이 자신의 이디엄의 발현과 주관적 세계에 집중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히려 외적이고 객관적인 결과물을 도출해내는 데 집중하도록 압박한다. 이처럼 성과사회의 보이지 않는 권력에 의해 자기착취에 매인 주체는 자유롭고 진정한 놀이를 즐기지 못한다. 멋지지 않은 이야기들과 실패로 점철되었던 실험의 과정은 매끄럽고 아름다운 결과물 뒤에 숨겨져야 한다. 성과사회의 돌봄조차 주체의 필요보다 아름다운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한 돌봄이 되고 있는 것이 오늘날 돌봄의 현실이다. 돌봄의 과정이 사라졌다. 성과라는 결과만이 보여야 할 뿐이다. 그리하여 필자들은 성과사회에서의 주체가 자유롭고 생생한 삶을 회복하기 위해 필요한 돌봄은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이라고 주장하며, 돌봄의 결과보다는 과정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이 주장을 발전시키기 위해 볼라스와 도널드 위니캇과 대화를 이어간다. 돌보는 사람 또한 성과사회의 주체이다. 돌본다는 것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의 동반자가 되는 것이다. 돌봄의 관계가 동반자의 관계로 변화될 때에만 상호놀이가 가능하게 된다. 상호놀이는 돌봄의 과정에 머물도록 하는데, 이 돌봄의 과정에는 창조와 파괴, 사랑과 공격성의 역동에 대한 인정과 수용의 과정이 포함된다. 이러한 수용과 인정의 과정 속에서 자신의 고유한 이디엄이 발현되고, 나아가 자기가 회복되고 확장된다. 이는 돌봄의 동반자 모두에게 충분히 좋은 관계 경험이 될 것이다. 필자들은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은 상담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가족, 공동체, 문화의 영역으로 확장되어 나간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어머니 유아 사이의 놀이가 문화로 확장되어 나간다고 보았던 위니캇의 주장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므로 우리시대의 목회돌봄은 상호놀이가 되어야 한다. 상담실에서 시작된 상호놀이로서의 돌봄은 성과사회의 어두운 곳을 밝히고 회복시켜 나가는 새로운 문화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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