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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재 신채호에 의해 개시되고 대종교와 밀접한 관련 위에서 전개된 민족주의사학은 서기전 24세기에 시작된 민족사가 단군-부여-고구려로 이어지며 만주일대에서 펼쳐졌다는 민족 정체성을 정립하였고, 항일독립투사들의 사상적 기반이 되었다.
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한 안재홍은 조선 고유의 역사 유산 속에서 고래(古來)의 민주주의 원리이자 철학인 「다사리」 사상을 찾아내어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사상·이념적인 토대로 삼아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로 정리하였다.
안재홍이 조선 역사에서 찾은 「다사리」는 고대의 민주주의였으나 특수 계급(귀족)에게만 독점되었다. 안재홍은 그 향유 대상을 전민족ㆍ전민중에까지 확대하여 보편화하고, 부·권력·지식을 전민중이 균등하게 누리며 공영(共榮)하고, 모든 국민이 노동균등이라는 의무를 함께 해야만 신민주주의이자 신민족주의가 된다고 보았다. 이런면에서 민족주의, 민주주의, 좌우합작 등 모든 면에서 안재홍과 다른 길을 걸은 손진태는 안재홍과 같은 ‘신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평가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모두 안재홍이 조선 고유의 사상에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를 찾아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할 뿐, 그 조선 고유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논문은 별로 없다.
안재홍은 조선 선민(先民) 세계관의 이치를 일·삼(一·三)사상을 자기화한 표현으로 「비」(허공)·「몬」(물질)·「씨」(종자)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고래의 민주주의였지만 1945년 당시에는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서 이해해야 할 홍익인간사상을 「다사리」로 이름 지어 신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삼기도 했고, 「신지비사」에서 연원한 조소앙의 균평흥방론을 신민족주의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에서 보이는 이러한 안재홍의 사상은 안재홍이 선가(仙家)였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구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한국선도라는 관점에서 안재홍을 바라보아야 올바른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안재홍에 대한 기왕의 ‘단군민족주의’라는 평가는, 단군민족주의의 핵심인 홍익실천사상의 조화·상생·평화라는 내용성과 환웅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시기성을 함께 고려하여 새롭게 ‘홍익민족주의’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하였다.
민족주의사학을 계승한 안재홍은 조선 고유의 역사 유산 속에서 고래(古來)의 민주주의 원리이자 철학인 「다사리」 사상을 찾아내어 통일민족국가 건설의 사상·이념적인 토대로 삼아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로 정리하였다.
안재홍이 조선 역사에서 찾은 「다사리」는 고대의 민주주의였으나 특수 계급(귀족)에게만 독점되었다. 안재홍은 그 향유 대상을 전민족ㆍ전민중에까지 확대하여 보편화하고, 부·권력·지식을 전민중이 균등하게 누리며 공영(共榮)하고, 모든 국민이 노동균등이라는 의무를 함께 해야만 신민주주의이자 신민족주의가 된다고 보았다. 이런면에서 민족주의, 민주주의, 좌우합작 등 모든 면에서 안재홍과 다른 길을 걸은 손진태는 안재홍과 같은 ‘신민족주의자’라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안재홍의 신민족주의에 대한 기존의 연구와 평가는 다양하지만 이들은 모두 안재홍이 조선 고유의 사상에서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의 바탕을 이루는 요소를 찾아냈다는 것을 공통적으로 인정할 뿐, 그 조선 고유의 사상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한 논문은 별로 없다.
안재홍은 조선 선민(先民) 세계관의 이치를 일·삼(一·三)사상을 자기화한 표현으로 「비」(허공)·「몬」(물질)·「씨」(종자)를 들어 설명하기도 하고, 고래의 민주주의였지만 1945년 당시에는 개념과 내용을 확장해서 이해해야 할 홍익인간사상을 「다사리」로 이름 지어 신민주주의의 핵심으로 삼기도 했고, 「신지비사」에서 연원한 조소앙의 균평흥방론을 신민족주의에 활용하기도 하였다. 「신민족주의와 신민주주의」에서 보이는 이러한 안재홍의 사상은 안재홍이 선가(仙家)였음을 입증하고 있으며 따라서 서구의 정치사상이 아니라 한국선도라는 관점에서 안재홍을 바라보아야 올바른 평가가 가능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한 필자는 안재홍에 대한 기왕의 ‘단군민족주의’라는 평가는, 단군민족주의의 핵심인 홍익실천사상의 조화·상생·평화라는 내용성과 환웅시대부터 시작되었다는 시기성을 함께 고려하여 새롭게 ‘홍익민족주의’로 바꾸는 것이 타당하다고 제안하였다.
본문·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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