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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성신여대)
저널정보
한국유라시아연구원 유라시아문화 유라시아문화 제8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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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후한서』에 낙랑군은 옛날의 조선국이라며 요동에 있다고 적고 있다. 『후한서』 왕경전에는 왕조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들을 요동에서 토벌한 것으로 왕조의 선조는 낙랑인으로 나온다. 『후한서』 최인전에는 최인이 장잠현장에 임명된 기록이 나온다. 『후한서』 광무제기에 낙랑군은 옛 조선국이며 요동에 있다는 이현의 주와 『후한서』 왕경전에 낙랑이 요동에 있다는 기사를 모두 신뢰한다면 요동에도 낙랑이 있다고 검토해 볼 수 있다. 『삼국사기』에는 32년 호동이 놀러간 최리의 낙랑군을 고구려가 항복시키고 그 낙랑국을 37년에 멸망시켜 고구려에 통합한다. 44년 후한 광무제가 병력을 보내 바다건너 낙랑을 치고 군현을 삼았으며 살수 이남을 후한에 속하게 한다. 그럼으로 고구려는 낙랑을 다시 후한에 빼앗김으로 살수 이북에 그 경계를 두었던 것이다. 또 『후한서』 본기와 『후한서』 부여전, 『자치통감』에는 111년 부여가 낙랑을 침범한 기사가 나온다. 이에 관련 사료가 3개나 되고 구체적으로 기사가 나온다는 점에서 부여의 낙랑 침범은 사실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요동의 낙랑이 『구당서』 가탐전에는 후한의 헌제 건안 연간인 196년부터 219년 사이에 함락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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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ECN-0101-2023-900-00041927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