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국립창원대학교)
저널정보
부산대학교 인문학연구소 코기토 코기토 제104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0

검색

    초록·키워드

    사회주의자들과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파시스트 쿠데타’로 간주 되었던 1934년 2월 6일 위기와 함께, 프랑스에서 파시즘은 현실적인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이후 코민테른조차 사회당과 공산당의 반파시즘 연대를 인정하는 정치적 대전환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프랑스에서 무솔리니의 로마진군이나 히틀러의 뮌헨폭동과 같은 파시스트의 위협으로 인식되기에 충분한 배경을 가지고 있었다. 훗날 민족전선의 네오-파시스트들과 그 후예들이 1934년 2월6일 폭동을 대의를 위한 희생의 출발점으로 여기는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프랑스의 네오-파시스트들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해 미디어 매체를 만들고, 이를 통해 로베르 브라지약과 1934년 2월 6일 폭동을 기억하면서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이 사건을 기념 해 나갔다. 결국 1930년대 좌파에게 공화국의 위기를 만든 사건으로 인식되었던 2월 6일 폭동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극우세력에 의해 민족전선의 창립신화로 새롭게 기억되었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5-02-0910638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