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공학
의약학
농수해양학
예술체육학
복합학
지원사업
학술연구/단체지원/교육 등 연구자 활동을 지속하도록 DBpia가 지원하고 있어요.
커뮤니티
연구자들이 자신의 연구와 전문성을 널리 알리고, 새로운 협력의 기회를 만들 수 있는 네트워킹 공간이에요.
초록·키워드
이 글은 1993년 8월 고노담화의 배경을 살펴보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를 위해 우선 1992년 상반기 태평양전쟁유족회의 활동을 중심으로 일본군 ‘위안부’문제를 살펴보았다. 특히 고모담화가 나온 결정적인 배경은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의 활동이라고 주장하는 일부 연구자의 주장은 사실과 다르다. 이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와 그 소속 일본군‘위안부’ 피해자들의 역할이 결정적인 요인이 되었던 것이다.
양순임 등이 이끈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재판에 적용된 ‘인도상의 죄’를 근거로 1992년 4월 13일 일본 정부를 피고로 하여 위안부 6인을 포함한 41명의 원고가 동경지방재판소에 ‘아시아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보상 청구소송’ 제기였다. 이후 1992년 6월 1일 제1회 구두변론을 위해 방일한 피해자들이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청취 및 사좌·보상을 요구하는 등 5개항의「요망서」를 기무라에게 전달하였다. 이는 ‘위안부’피해자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위안부 운동사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반면,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피해자들이 요구한 직접 청취를 반대하였다. 앞으로 밝히겠지만 1992년 하반기의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활동은 1993년 상반기의 활동과 아울러 1993년 7월 26-30일 5일간 진행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소속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증언이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1992년 상반기의 태평양전쟁유족회의 활동이 주목된다.
양순임 등이 이끈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1945년 뉘른베르크 국제재판에 적용된 ‘인도상의 죄’를 근거로 1992년 4월 13일 일본 정부를 피고로 하여 위안부 6인을 포함한 41명의 원고가 동경지방재판소에 ‘아시아 태평양전쟁 한국인희생자 보상 청구소송’ 제기였다. 이후 1992년 6월 1일 제1회 구두변론을 위해 방일한 피해자들이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직접 청취 및 사좌·보상을 요구하는 등 5개항의「요망서」를 기무라에게 전달하였다. 이는 ‘위안부’피해자가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를 대상으로 직접 자신들의 의견을 전달하였다는 점에서 위안부 운동사에 큰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반면, ‘한국정신문제대책협의회’는 성명서를 발표하여 피해자들이 요구한 직접 청취를 반대하였다. 앞으로 밝히겠지만 1992년 하반기의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의 활동은 1993년 상반기의 활동과 아울러 1993년 7월 26-30일 5일간 진행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소속의 위안부 피해자들이 한 증언이 일본 정부의 고노담화의 직접적인 배경이 되었던 것이다. 이점에서 1992년 상반기의 태평양전쟁유족회의 활동이 주목된다.
#일본군 ‘위안부’
#고노담화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일본의 전후책임을 확실히 하는 회
#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양순임
#Japanese military comfort women
#Kono’s Statement
#Association For Japan’s pre-and post-war responsibilities(日本の前後責任をハッキリさせる會)
#The Pacific War Victims Association
#Korea Council for the Women Drafted for Military Sexual Slavery by Japan
#Yang Soon-im
본문·목차
인공지능 문자 인식 모델을 통해 추출된 텍스트로, 일부 오타나 오류가 포함될 수 있으나 지속적으로 개선 중입니다.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오류를 발견하셨다면 해당 부분을 드래그한 후 ' 를 통해 신고해주세요.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5-02-09122458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