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고려대)
저널정보
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97호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2

검색

    초록·키워드

    이 글은 군적정보의 형식화와 그것을 초래한 제도운영의 실상에 대한 고찰을 시도한 것이다. 군역의 운영과정에서 代定을 통한 결원의 보충방식은 많은 문제를 드러냈다. 里定法은 인보조직과 수령-마을 간 행정기능의 강화를 통해 촌락의 내부공간에 軍丁 확보의 연대책임을 부여함으로써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군적개수의 중지나 연기가 일상화하자 軍案의 虛簿化는 돌이킬 수 없는 추세로 자리잡게 된다. 군적의 작성은 지역별로 각양각색이었는데 여기에서 특징적인 것은 面단위가 군안 작성의 중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수령은 面別 軍案을 취합하여 정리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군역이 인신파악과 동원이라는 본래의 목적과 크게 멀어진 형태로 운영되자 개인의 신상과 관련된 성명・나이・안면・흉터・신장 등은 물론 역종이나 직역의 정보조차 사실상 무의미해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역종별 役價가 대부분 동일했고 역총의 규모도 급격한 변동이 없는 상황에서 나름 유의미한 정보는 면리 단위 군역부담의 근거로 軍根・役根을 의미하는 ‘本’ 정도였다. 군적은 국방・치안을 위한 인적자원 확보라는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사실상 부세수취를 위한 재정장부로 화하였다. 군역이 국방・치안을 위한 실질적 물리력으로 기능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막대한 군비를 충당할 뾰족한 방안을 찾기는 힘들었다. 아 때문에 개항 전후 취해진 군비강화책도 종래의 방식을 답습하는 수준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수록 정보가 선택적 유용성만 가지게 되었음에도 군적이 제도적 관성에 의해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던 점은 당시 왕조 정부가 처한 어려운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5-02-0912532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