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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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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국어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사학회 한국고대사연구 한국고대사연구 제11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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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에서는 3세기 마한사회의 대외관계에서 중요한 기리영전투와 서진과의 교섭 문제를 중심으로 연구의 현황과 쟁점, 과제를 정리해보았다. 3세기 중반 대방군 기리영 공격을 주도했던 세력에 대해서는 백제국설, 목지국설, 신분고국설 등 다양한 의견이 있다. 『三國志』의 판본 대조를 통해 臣濆沽國설이 입지를 넓히고 있다. 그러나 기리영 공격의 주도세력만이 아니라 참여세력, 전투의 전개 양상, 결과에 대한 검토가 구체화될 필요가 있다. 백제국이 주도권을 장악하게 된 배경, 주도권을 행사한 범위 및 그 내용, 주도권 장악의 시점과 이를 입증할 만한 고고자료 등에 대한 논의도 추가적으로 필요하다.
    3세기 후반 西晉과의 교섭을 주도한 『晉書』 마한전의 ‘其主’에 대해서는 ①마한주는 백제왕이고, 모든 교섭을 백제(국)이 주도했다는 설, ②마한주는 백제왕으로 보되, 여타 세력도 참여했다는 설, ③마한 (목지국) 주도설, ④마한 각 소국 수장의 개별적 · 독자적 교류설로 기존 연구를 구분하였다. 282년 서진과 교섭한 新彌(諸)國에 대해서는 馬韓主 관할 하의 연맹체와는 구분되는 영산강유역의 연맹체를 상정하는 것이 다수설이지만, 백제국 중심 연맹체내의 한 국가로 보거나, 신미제국은 영산강유역의 마한 나라들일 뿐으로 신미국을 연맹체의 맹주로 상정할 수 없다고 보기도 한다. 서진과의 통교 방식, 신미제국의 서진과의 교섭 시 백제의 태도에 대해서도 규명이 필요하다.
    이처럼 3세기 중 · 후반 단계 마한사회에는 복수의 중심세력이 있었고, 기리영 전투, 진과의 교섭을 거치면서 중심세력이 변화하였으나, 아직 교섭을 총괄하는 단일한 주도세력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추세이다. 이들 마한사회 중심세력의 발전단계에 대해서는 연맹체의 개념 및 구조에 대한 논의와 함께 향후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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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126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