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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1940년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한국독립당을 창립하고 한국광복군을 창설했다. 정・당・군 체제를 갖춘 임시정부는 1941년 11월 건국강령을 발표했고, 1942년 조선의용대 일부를 한국광복군 제1지대로 편입하였다. 이어 조선민족혁명당 조선민족해방동맹 등의 인사들이 임시의정원 의원으로 선출되어 1942년 10월 임시의정원이 ‘통일의회’로 구성되었다. 1944년에는 좌익계 6명을 국무위원으로 선출하고 조선민족혁명당의 김규식이 부주석, 김원봉이 군무부장으로 취임했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중경 지역 독립운동 세력을 통합한 좌우연합정부의 위상을 가지게 되었다. 이 즈음 이충모는 소련과 중앙아시아, 중국 서북부 등을 거쳐 1944년 7월 28일 중국 중경에 도착했다. 이충모는 소련지역과 중국 서북부 한인 상황을 임시정부에 보고했다. 이를 토대로 임시정부는 중국 서북부지역 정책을 세우고 이충모를 임시정부 특파원으로 파견해 일제에 징병된 한인 청년들의 탈출과 한국광복군 편입을 추진했다. 소련지역 한인에 대해서는 외무부장 조소앙이 정치적 탄압으로 감금된 한인 혁명가 57명을 임시정부에 보내 줄 것을 요청하는 서한을 타스통신사 주중특파원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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