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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이 글은 1848년 유럽 혁명과 미국 공화당의 대외정책 형성 사이의 연관성을 헝가리 혁명가 러요시 코슈트(Lajos Kossuth)의 미국 방문과 이에 대한 논쟁을 통해 분석한다. 코슈트가 미국을 방문한 1850년대 초는 1848년 유럽혁명의 여파가 여전히 남아 있던 시점이자, 미국 내에서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이 고조되는 시기였다. 1848년 유럽 혁명 당시 미국의 반노예제 정치인들은 유럽 혁명가들의 ‘제국의 압제에 대항한 민족의 자치’라는 외침을 자신들의 반노예제 대의인 ‘노예주 세력(Slave Power)에 맞선 민주주의’와 동일시하였다. 그들은 유럽의 혁명가들을 지지하는 것이 반노예제 대의를 국제적으로 확장시키는 일이라고 인식했다. 그러나 1850년대 초반 코슈트의 미국 방문은 반노예제 정치인들 사이에 개입주의와 비개입주의라는 두 상반된 노선을 드러내는 계기가 되었다. 이 연구는 공화당의 정치인들 사이에서 나타난 개입과 비개입의 갈등을 윌리엄 수어드(William H. Seward)와 찰스 섬너(Charles Sumner)의 논쟁을 통해 분석하면서, 이들의 입장 차이가 국내 노예제 폐지에 대한 서로 다른 전략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당시 반노예제 정치인들이 직면했던 질문, 즉 “타국의 자유를 위해 미국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공화당의 두 상반된 외교 노선, 즉 제국주의와 반제국주의 노선의 기원으로 이어졌다고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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