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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시기 사실상 직접적 교류가 거의 없었던 한국과 소련 관계는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의 위기와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 추진하던 구조적 변동의 시기에 변화하기 시작했다. 소련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 근거한 새로운 국제관계 노선과 한국 노태우 정부의 북방정책이 조우하면서 양국 관계는 급진전되었다. 통상 한국과 소련 양국의 접촉과 관계정상화에 대해 양국의 상이한 목적이 강조되어왔다. 많은 연구들은 한국과 소련의 관계 정상화 과정에서 한국은 주로 외교·안보적 목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고, 소련은 어려워진 국내 경제 상황을 타파하기 위한 한국과의 경협 과정에 주목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또한 양국의 수교 과정에서 경제교류 과정이 많은 역할을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고 상호 인정에서 제일 중요했던 것은 비밀외교 과정이었다는 연구와 회고가 주를 이뤘다. 하지만 양국의 관계 정상화 및 수교 과정을 살펴보면, 그 목적과는 별개로 양국간 경제 교류 분야의 역할이 두드러졌던 것이 사실이고 이후 한러 관계를 복기해보면 양국간 교류가 안보전략적인 목적에서 경제 교류 목적으로의 급격하게 변화해왔음을 알 수 있다. 특히 한국정부의 정치적 목적과는 상관없이 한국 내 많은 기업들이 소련으로의 진출을 일찍부터 모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민간 경제 교류 과정이 한국과 소련 수교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볼 수 있다. 즉, 중요한 것은 페레스트로이카 시기 한국과 소련의 경제 교류 관계는 관계 정상화 이전부터 공식 외교관계 수립 직후까지 한소 관계를 견인하는 중요한 매개였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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