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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71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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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 고대시기의 族姓과 가바네(姓)는 사회적인 신분을 상징하는 보이지 않는 표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賜姓이 천황의 全權으로 이루어지는 天恩이라면, 改・賜姓청원은 청원자들의 요청과 천황의 승인 과정을 거치는 천황↔청원자간의 쌍방향적인 구조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도래계 씨족들의 개・사성 청원은 ‘선조 도래의 연혁과 일본 조정의 귀화’ 라는 공통적인 내용을 담아 씨족의 정체성을 증명하며 사성 청원의 정당성을 입증하고자 하였다. 奈良시대 중기까지의 개・사성 청원은 도래계에 대한 집단사성 정책과 연동되면서, 청원의 결과가 씨족질서의 재편으로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桓武조에서는 상위 가바네에 대한 강한 願望을 가진 大和조정 시기부터의 구도래계 씨족을 중심으로 개・사성 청원이 증가하게 된다. 이들 대부분이 ‘宿禰’에 사성된 바와 같이, 도래계의 가바네의 상한은 宿禰라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씨성제 질서에서 벗어난 것이 칸무천황의 寵臣인 津連眞道(쯔노무라지 마미치)에 대한 ‘菅野朝臣’사성이었다. 마미치는 칸무조의 모계 혈통의 격상작업에 편승하며, 백제국 왕의 혈통으로 자신의 계보를 윤색한 측면도 있었지만, 뛰어난 才技와 함께 시류를 간파할 수 있는 안목이 있었다. 여타씨족의 청원이 현재의 가바네에 대한 불만을 암묵적으로 표했다면, 마미치는 칸무조부터 본격화되는 숭문의 풍조 속에서 ‘⽂’을 전면에 내세우며, 백제왕족 후예로서의 우월한 出自→가문의 형성(葛井, 船, 津씨)→가문의 인정(國史 및 家牒詳載)→가문의 계승(家傳⽂雅)과 같이, 과거-현재-미래로 계승되는 名家를 부각시키면서, 사성의 타당성을 논리정연하게 주장하였다. 마미치의 ‘菅野朝臣’사성을 계기로 ‘本出一祖’ 의 葛井・船・津씨가 菅野朝臣 으로 통합되어 가며, 平安귀족 사회에서 菅野씨가 도래계의 주류씨족으로 부상하는 등, 전체적인 씨족질서가 재편되는 새로운 양상을 맞이하게 된다. 즉 헤이안 시대의 씨족질서의 새로운 전환점이 된 마미치의 菅野朝臣 사성이야말로, 칸무천황의 ‘侍臣, 寵臣’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나 ‘貴須王’의 후예로서의 ‘菅野’ 가문의 성립이라는 측면에서 특별한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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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22540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