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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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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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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영양학은 19세기 인간의 대사를 연구한 학문으로 시작되었다. 서구는 영양학을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시민의 빈곤 문제를 대사 및 식량문제로 축소시켰다. 이는 농지개혁을 바탕으로 한 저개발국 근대기획과 충돌하였다. 한국에서 영양학은 식민지 시기에 시작되어 해방 후 미국 및 국제기구를 통해 발전하였다. 이 과정은 상호 충돌하는 과정이 아니었으며, 19세기의 근대 기획이 미국의 냉전기획과 ‘절합’하는 과정이었다. 1962, 67년 한국인 영양권장량 제정 및 개정 과정은 그 결과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1962년 한국인영양권장량 제정은 FAO가 한국인 영양권장량의 중요한 표준으로 등장한 계기였다. 기존 식민지 가정학, 약학, 화학, 의학전공자들이 여기에 참여하였다. 초기 영양학의 전유에서 식민지 가정학은 큰 역할을 하였다.
    1967년 한국인영양권장량 제 1차 개정에서는 영양학 연구자, 의학, 약학 연구자들과 가정학 연구자들이 참여하였다. 식민지의 경험에 더해 미국 유학 경험을 지닌 연구자들이 대거 참여하였다. 이 시기 국내 영양학의 성장을 반영하여, 영양학 전공자 비율도 늘었다.
    그러나 식민지 영양학과 냉전 하 영양학의 근대적 내용은 충돌하지 않았다. 중요 연구자들의 경력 및 연구 내용이 이를 반영한다. 영양학은 일본, 독일, 미국 등의 성과를 두루 활용하였다. 이 과정에서 한국 영양학자들은 주로 ‘현지화’에 고민하였고, 근대 기획 자체에 의심을 품지는 않았다. 그 결과 일본은 물론 서구, 그리고 미국의 각기 다른 근대기획이 영양학을 통해 국내에 재전유되었으나, 그 과정은 비가시화되었다.
    흔히 근대 과학은 인문학적 분석의 대상에서 제외되곤 한다. 그러나 19세기를 전후한 서구 근대국가기획은 다양한 과학을 통해 식민지 및 저개발국에서 재전유되었다. 영양학은 그 중 가장 대표적인 ‘도구’였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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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21001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