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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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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경남사학회 역사와경계 역사와경계 제130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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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명초 이갑제는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것이며, 위계적인 질서를 이루고 있었다. 이갑제에서 일조편법으로의 변화 요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중앙정부의 재정압박이었다. 재정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 이갑제하의 하층민에게 많은 요역 부담을 전가하였고 이것이 이갑제를 동요하게 하였다. 이러한 동요를 막기 위하여 여러 가지 부담을 공평하게 하는 정책이 취해졌는데 이것이 일조편법이 등장하는 중요한 계기였다. 이갑제 시기까지는 토지 비옥도가 균질하지 않아서 토지면적만으로는 재산을 측정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과칙(科則)이 세분화되고 인정(人丁)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했다. 이를 판단하고 요역을 부과하는 것은 이장호에게 맡겨졌다.
    명대 중기 이후, 농지조건이 개선됨에 따라서 비옥도가 균질화되면서 토지 면적만으로 재산을 측정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관이 직접 백성들의 재산을 측정하고 요역을 부과할 수 있었고, 이갑제는 점차 기능을 잃게 되었다. 명초, 비교적 이동이 제한적이며 지주층을 기반으로 한 향촌 중심의 중국 사회는 명중기를 기점으로 점차 관과 신사층을 중심으로 하는 광역적이고 이동이 빈번한 유동적인 사회로 변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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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21072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