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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키워드
『파친코』는 소설의 첫 대목부터 우리를 실망시킨 ‘역사’와 이에 아랑곳하지 않는 ‘우리’의 대립을 상정하면서 국민국가의 폭력성 대 트랜스내셔널 주체의 창조성이라는 구도를 전제한다. 식민지 조선과 일본의 오사카 및 요코하마를 넘나드는 주요 인물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하는 『파친코』의 서사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는 초국적 자본, 노동, 문화의 유동과 이의 정치·경제적 함의에 주목하는 트랜스내셔널리즘을 통해 제대로 분석될 수 있다. 『파친코』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의 갈등과 대립은 크게는 내셔널리즘과 트랜스내셔널리즘의 대립으로 범주화된다. 예컨대, 내셔널리즘을 신봉하는 김창호는 분단 조국의 통일에 기여하기 위해 북조선으로의 귀국을 선택하지만, 국민국가에 대한 아무런 귀속감이 없는 고한수는 자신의 이익에 부합하는 초국적 자본에만 충성하는 트랜스내셔널 주체이다. 이런 의미에서 고한수는 트랜스내셔널 주체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보여주는 인물이다. 고한수와 달리 솔로몬과 선자는 고정되고 영원한 정체성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며, 이것이 개인의 운명을 미리 결정해 버릴 정도의 선험적 영향력을 미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경계인으로서 살아온 과정에서 갖게 된 혼종적, 유동적 정체성을 창조적으로 전유한다. 특히 선자는 인종이나 국적 혹은 혈통이나 피부색을 초월하는 환대와 사랑을 베푸는 인물로서, 화해와 상생의 새 역사를 창조해가는 진정한 트랜스내셔널 주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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