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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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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악어문학회 동악어문학 동악어문학 제95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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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본고는 1938년 10월 하순에 열린 「조선문화의 장래」 좌담회를 조선 및 일본의 문예통제에 측면에서 살핀다. 이 좌담회의 양상은 조선과 일본의 언론에서 보도되었다. 정보과가 설치되기 전인 이 시기 경무국 도서과는 일본측과 연계하고 이 좌담회를 기획, 이것을 계기로 문인 북지위문단 결성과 조선문인협회의 설립을 꾀했다. 도서과가 기존의 조선문예회를 부정하고 새로운 조직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은 학무국과의 관계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함으로 보인다. 한편 좌담회에 참석한 하야시 후사오(林房雄)는 신일본문화회를 결성한 인물로 영화 제작 등 국책문화 사업의 수혜를 받고 있었으며 조선 문인에게도 국책사업의 혜택을 강조했다. 해당 좌담회에서는 조선어 번역의 불가능성을 둘러싸여 일본 문인과 조선 문인의 의견차이가 고스란히 드러났다. 장혁주는 후속기사를 써서 조선 문인들의 태도를 비하하며 국책수행에 유리하도록 여론을 유도했다. 장혁주의 후속기사는 1939년 『삼천리』 4월호에 하야시의 글과 함께 실렸다. 이 글에서 하야시는 미나미 총독을 찬미하고 미나미와 인연이 깊은 학무국장 시오바라를 호명했다. 당시 문화선전에 있어 시오바라의 영향력은 컸고, 도서과는 검열 업무에서 선전으로 방향을 틀었지만 1943년 결국 폐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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