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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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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학회 한국사학보 韓國史學報 제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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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록·키워드

    원간섭기에 편찬된 사서는 대부분 고려 왕조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특징적이다. 학계에서는 이를 당대사 편찬으로 규정하고 있다. 앞선 왕조사는 이를 이은 왕조에서 편찬하던 동아시아 역사편찬의 전통을 염두에 둘 때, 이 시기에 편찬된 고려 역사를 당대사로 규정하는 것은 적정하다. 그러나 이 시기에 편찬되어 원에 보낸 사서 중 하나인 『고금록』에서 ‘古今’의 기점이 쿠빌라이가 등극한 후 원에 臣服한 연월을 기준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세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원간섭기에는 당대와 이전을 구분하여 이해하려는 인식이 있었는데, 이것은 이 시기 역사인식의 특징 중 하나일 것이다. 이 글에서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원간섭기 전반에 편찬된 『천추금경록』・『금경록(국사)』・『세대편년절요』가 각기 다른 역사의식에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계기적인 동인에 의해 이루어진 연속적인 것이었음을 민지의 『세대편년절요』 편찬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1280년대 후반부터 1300년대 초반까지 40~50대의 민지는 고려 역사를 주제로 원과의 외교에서 적극 활동했다. 그들과 역사 논쟁을 서슴지 않았고, 그 결과를 증명하려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세대편년절요』는 충렬왕 4년(1278) 원의 역사편찬 요구에 따른 本國累朝事跡의 최종 결과로서 성격을 가진다. 정가신의 『천추금경록』을 포함하여 『금경록(국사)』과 『세대편년절요』가 원의 요구에 따라 편년체로 편찬된 사서라는 점에서 일정한 한계를 가지고, 역사적 사실에 일부 왜곡이 이루어진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고려의 국체와 정체성이었다. 이 시기에 편찬된 3종의 사서는 이런 측면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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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CI(KEPA) : I410-151-25-02-0931049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