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소속 기관 / 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논문 기본 정보

저자정보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저널정보
한일관계사학회 한일관계사연구 한일관계사연구 제88집
오류 신고하기

피인용 1

검색

    초록·키워드

    본 연구의 목적은 태조5(1396)년 12월 ‘왜구의 괴수 5명이 수백 명을 거느리고 영해 축산도에서 항복’했던 당시 왜구의 우두머리 상만호의 실체를 밝히는 것이다. 이것은 고려말-조선초 왜구의 구성 및 실체를 규명하는데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상만호는 투항한 이듬해 1월 울주지사 이은과 이예 등을 붙잡아 도주했다. 이때 붙잡혀 간 이예의 증언에 따르면 “홍무 병자(1396)년 12월에 비구로고(非舊⽼古) 등이 3천 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항복했으나 이은과 이예 등을 붙잡아 달아났고, 이은과 이예 등은 비구로고에 의해 죽음을 면하고 대마도 화전포(和田浦)에 유치됐다”고 한다. 즉 상만호는 비구로고이다. 비구로고란 히코로쿠(彦六)인데 이 이름은 대마도 소씨 적장자에게 계승되는 이름이다. 1396년에 활동한 히코로쿠는 소 사다시게(宗 貞茂)이다. 따라서 ‘상만호=비구로고=히코로쿠=소 사다시게’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또한 이예가 유치된 화전포의 위치가『해동제국기』의 「대마도지도」에서 완다노포(니이의 입구)로 지목되어 왔으나, 화전포는 니이군이 아니고 요라군(与良郡) 오야마(大山) 가즈타노우라(和田ノ浦)였다. 중세 오야마 화전포는 소씨 종가와 연고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일본의 중세 대외관계사 연구자 무라이 쇼스케는 왜구의 실체가 일본인만이 아니라 한반도 및 중국의 도서 연해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도 해당한다는 소위 <왜구경계인설>을 주장하고 있다. 이 설의 전제가 되는 것이 <왜구=비영주(非領主)·주민(住⺠)>설이다. 즉 왜구의 실체는 영주나 무사가 아닌 비영주·주민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1396년에 침구·항복했다가 도주한 왜구 우두머리 상만호=비구로고(히코로쿠)는 훗날 제7대 대마도주가 되는 소 사다시게이다. 따라서 무라이 쇼스케의 <왜구=비영주·주민>설은 재검토되어야 한다. 본 고찰은 조선 초 왜구의 두목으로서 그 직함이 사료에 명시되어 있는 ‘상만호’의 정체를 밝힘으로써, 고려말-조선초 왜구의 구성 및 그 왜구를 이끌고 영향력을 미친 세력의 정체를 규명하는 데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UCI(KEPA) : I410-151-25-02-093166387